박명순의 영화이야기=모드 루이스의 평범한 마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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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모드 루이스의 평범한 마술이야기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0.12.2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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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영화 내사랑 장면 사진=박명순작가
▲영화 내사랑 장면 사진=박명순작가

 

영화 내 사랑을 통해 만난 모드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나이브 화가이다. 나이브 화가란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고 화풍에 무관하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의미하는데, 대중과의 소통이 가능한 지점은 평범한 존재들의 생명력이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처럼, 루이스의 그림은 자신이 동경하는 또는 기억하고 싶은 또 다른 세상이다. 어쩌면 루이스에게 그림이란 어린아이의 물장난처럼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단순한 행복일 지도 모른다. 그림을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배움이 없었기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동감 있는 에너지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과 새와 나무와 같은 자연물 그리고 자신의 동반자를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표현하여 평범한 소재에 독특한 생명력을 일깨웠다. 루이스에게 그림이란 세상을 향한 창문이자 통로였다.

모드의 동반자 에버렛은 고아원에서 자라며 문자조차 배우지 못한 채, 땔감과 생선을 팔아 살아가는 사람이다. 모드와 에버렛의 만남은 나무꾼(생선장수)과 가정부로 시작한다. 가정부가 나무꾼을 사랑하였고, 둘은 부부가 되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이 영화의 밑그림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정규 학습으로 배우지 않아도 유명화가가 될 수 있고, 교육을 받지 않아도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까? 가르치는 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에 대해 그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 영감(靈感)을 되새기게 만드는 영화였다. 배울 수는 있지만 가르칠 수는 없는 상황에서 터득해야 하는 열정과 겸허함을 배운다.

모드와 에버렛 두 주인공 모두 사회에서 버림받다시피 팽개쳐진 존재들이다. 모드는 평범한 가정에서 기본교육을 받았으나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몸이 뒤틀려서 가족에게 골칫거리였다. 보살핌보다는 천대와 무시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천성적으로 유쾌한 성품을 지녔다. 에버렛은 기본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돈에 인색하고 퉁명스럽고 거칠게 살아오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서툴다. 하지만 누구보다 사람을 그리워했을 내면에 깃든 다정함과 따스함을 모드가 알아챘고, 자신과 어울리는 짝이라는 기대감을 품었을 지도 모르겠다.

모드와 에버렛의 만남은 상처 입은 두 남녀가 처음에는 갑을관계처럼 에버렛의 폭력성과 모드의 비참함이 부각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 관계는 모드의 주도하에 점차 개선된다. 모드는 자신을 쫒아내려는 에버렛을 포기하지 않고 그를 변화시킨다. 에버렛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서 집안을 점차 자신의 아뜰리에로 변화시킨다. 모드는 삭막했던 집의 분위기를 자신의 그림과 어눌한 노동력으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은 닭 요리와 닭 그림이 나오는 부분이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은 모드와 에버렛을 연결하는 조력자이다. 짓궂은 호기심으로 에버렛과 모드의 동거를 기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과 다르게 그녀는 연민을 보일뿐이다. 닭 그림을 보고 찬사를 보내는 그녀.

당신이 그린 건가요?”

수줍게 그러나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모드.

, 우리 닭이에요. 예뻤어요. 이제는 없지만요. 보고 싶어서 그렸어요. 잊지 않으려고요.”

모드는 자신의 생존(에버렛에게 인정받아야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있기 때문에)을 위해 그 닭을 손수 잡아서 요리를 만들었지만 닭을 사랑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생존과 분리될 수 없는 이 사랑을 어떤 복합적 심리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닭도 그리고 꽃도 그리면서 모드는 에버렛의 집에서 점차 인정을 받는 자신의 그림처럼 당당하게 자리를 잡는데 성공한다.

 

모드가 그림을 그리며 작은 집에 점차 밝은 표정으로 자리 잡는 장면이 바그다드 카페와 겹쳐진다. 라스베가스의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바그다드 카페에서 마술쇼를 벌이는 야스민을 생각한다. 모드의 그림이 황폐한 에버렛의 작은집을 아름다운 예술가의 집으로 만들었듯, 야스민은 사막의 일부처럼 건조했던 카페를 생기 넘치는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남편과 여행 중 헤어진 야스민이 사막 한복판에서 카페를 발견한 기쁨을 영화는 다양하게 변주하여 보여준다. 알고 보니 이방인에게 쉼터일 수 있는 카페라는 공간이 거주자에게는 평화롭고 화해로운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인 브랜다는 남편과 불화를 겪고 있으며, 피아노를 치는 아들은 미혼부로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야스민은 이들과 친구가 되고, 카페의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손님에게 정성껏 서빙을 하면서 결국, 자신의 직업인 마술쇼 공연장소를 만들어낸다. 사막을 찾아온 48대의 트럭에 둘러싸인 바그다드 카페에서 벌어지는 마술쇼는 결국 우리네 인생이 꿈꾸는 장미꽃과 무지개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모드는 야스민이 바그다드 카페에서 만들어낸 마술처럼 작은집을 한 폭의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으로 변신시켰고, 포악한 군주처럼 군림했던 에버렛을 사랑스런 동반자로 변신시켰다. 본래 모드는 세련된 화풍과 거리가 먼 소박한 민속화가이다. 처음에는 페인트 남은 것으로 그림을 그렸었다. 원색의 그림에는 사계절이 혼합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의 그림은 따뜻하고, 천진스러운 평화로움이 담겨 있다. 모드가 성취한 행복은 바로 자신을 향한 따뜻함과 평화로움이다. 숙모는 모드를 불러서 용서를 빌며 말한다.

우리 가족 중에서 너만 행복을 찾았구나.”

숙모가 말하는 행복이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모드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지는 못했다. 죽을 때까지 작은 집에서 거처했고 자가용도 없었으니, 소비와 거리가 먼 삶이었으리라. 자식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고, 평생 뒤틀린 관절 때문에 고통 받았다. 그러나 그림이 잘 팔리게 되어 더 많은 시간을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모드는 그 시간을 충분히 즐겼다. 에버렛은 모드를 대신하여 청소와 집안일을 하며 툴툴댔지만 기꺼이 그 일을 맡았다.

모드의 그림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어린이 그림같이 단순 발랄한 색감이 주는 명랑함 때문이라 한다. 슬픔을 넘어서는 명랑함으로 키운 자존감은 사랑으로 승화했다. 자신의 그림을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모드는 그렇게 혈육을 나눈 가족과는 함께하지 못했던 사랑을 주고받았다. 밝은 색조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과 새와 물고기와 나무를 그리면서 모드는 천대받았던 자신의 아픔을 녹였을 것이다. 물론 천성의 밝음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아이까지 빼앗은 오빠와 숙모에게도 미움을 넘어서는 그리움을 품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했던 그 천성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기쁨의 주인공임을 자각했기에 스스로 진정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14년 전 제자 재준이가 예비신부와 찾아왔다. 사회복지사의 꿈을 이루었고 6년째 사귀는 여친과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내민다. 생각해보니, 중딩 시절 봉사활동을 열심히 다녔고, 모둠일기를 유난히 길게 썼던 친구이다. 생각만 해도 배시시 웃음이 피어나는 착하고 우직한 모습이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이 신기하다. 이제 동반자를 만나서 둘이 일구어갈 또 다른 세상이 마술처럼 펼쳐질 것이다. 제발 그 마술이 영원한 해피앤딩이 되기를 축원해본다.

(2016 제작, 아일랜드외, 에이슬링 윌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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