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서정주의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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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서정주의 추천사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4.2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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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의 말(1)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머언바다로

▲사진=공주시
▲사진=공주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겟모에 뇌이듯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이 시는 서정주 시인이 예부터 전해 내려 오는 춘향전에 나오는 성춘향의 마음을 시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케이스다. 어쩌면 이렇게 모두가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을 이중적으로 잘 표현했는지. 우리도 어려서 저 그네를 타 봤지. 동구 밖 고목나무에 어른들이 만들어 준 그네에 올라타 보면 날 것 같은 상쾌함 속에 떨어 질 것 같은 무서움이 혼합되어 느끼는 그 야릇한 맛이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리.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운동장엔 놀이기구를 만들어 놓는데 철봉이나 그네는 의무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유심이 살펴보면 운동장에 그네가 없어진 곳이 한 두 곳이 아니고 있다하더라도 아예 학교 운동장에서 그네 타는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안전이다 무엇이다 하면서 다칠 것을 더 두려워해서인지 학교운동장의 그네는 보물이 되어 가는 듯하다. 이를 어쩌랴. 작금의 현실이 누군가가 우리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느끼는 그 맛을,그 추억을 뺏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정주의 추천사로 다시 가 본다. 춘향은 그네가 하늘 높이 날 수 없는 걸 알면서 향단을 통해서 높이 날도록 밀어 올려 달라고 한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고 조심스럽게 밀어 달라 한다. 다소 곳 흔들리는 수양버들,베겟모에 뇌이듯한 풀꽃더미의 표현은 그네가 오고 가는 속에 일어나는 바람조차도 숨죽이고 가도록 느끼게 한다. 이 절묘한 표현은 누군가 서정주시인보고 언어의 마술사라고 하는 것에 공감이 가게 한다. 그것은 당시의 춘향이 기생의 딸로서 어쩌면 그 보이지 않는 어떤 사슬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벗어나더라도 그 자잘한 나비 새끼, 꾀고리들로부터 조심스럽게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대변했으리라. 나 스스로 어떻게 벗어 날 수 없기에 향단에게 조심스럽게 청하는 춘향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알 것만 같다. 우리들도 어떤 일들을 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누군가 조용히 표 않나게 도와주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듯이, 아마도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춘향이 기생집에서 보던 그런 세계에서 벗어나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과연 그런 곳은 어디일까? 어쩌면 그런 곳은 기생이라는 천민이라는 그런 신분이 표가 나지 않는 평등의 세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는 것은 아닐까?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세계, 그래서 가슴을 일렁이게 만드는 세계, 그 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갈망,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달은 지금도 서쪽으로 서족으로 마음대로 가고 있는데 나는 갈 수 없는 현실, 그네를 타고 마음껏 올라도 그 그네의 끈 높이만큼 밖에 올라 갈 수 없는 현실, 그러나 향단아, 나는 그래도 날고 싶다, 오르고 싶다, 가고 싶다, 그러니 이 그네를 밀어 다오, 저 높이 오를 수 잇을 때까지. 아마도 춘향은 그렇게 말하고 싶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을 게다. 어찌 보면 아름다운 그림의 한 장면 같으나 그 내면에는 아픔이, 슬픔이, 갈등이, 갈망이 함께 깃들어 있는 모습이리라.

 

서정주 시인은 춘향전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갈등과 그것을 넘으려하는 의지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춘향의 말,1,2,3을 통하여 아름다운 시로 나타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춘향의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들 모두의 숨겨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각기 보이지 않는 어떤 사슬 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내 감정을 마음껏 표출시키고 싶은 욕망, 모두가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춘향의 마음은 보편적인 우리들의 마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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