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한상각의 금강 철교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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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한상각의 금강 철교를 바라보며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5.1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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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철교를 바라보며
▲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물안개 자욱한 /금강 철교에

저녘 노을이 /발갛게

불타고 있다

 

이글이글 불타는 금강 철교

저녘 해는 다리 난간 위에 걸려 있고

하늘은 /노랑/빨강

저녘 노을로 강과 강바닥을 마구 누비고 있었다

나는/어느 덧 유년의 시절로 빠져들었다

 

강둑에 서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나.

 

나룻배에는/황혼이 짙게 서려 있고

황포 돛단배엔/저녘 노을이 불타고 있는데

어머니의 모습은/학의 자태

 

황혼에 물든 어머니/ 그리고 황포 돛대

그 때 어머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훨씬 젊은 새댁이었다.

 

****

 

공주 사람이 공주를 노래한 시를 찾아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청양이 고향이지만 공주사대를 나오고 공주사범과 공주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공주교대와 공주사대교수를 지내고 공주사대부설 백제문화연구소장을 지내고 공주에서 살다 1996년 공주에서 돌아가셨으니 공주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공주고를 졸업하고 공주교대를 다니면서 당시 국어과 교수님이셨던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선생님은 시의 제작 이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그 중에서도 비극적카다르시스에 대해 열강해주셨다. 그리고 교대 문학동아리였던 석초문학회를 지도해 주셨다. 당시 조재훈교수(공주대로 가심),박철희 교수(서강대로 가심) 님과 함께 내가 시를 쓰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입었고 공주교대문학의 부흥을 일으켜주신 훌륭한 선생님들이시다.

 

나는 선생님과 학생신분으로 만난 후 공주교대부국에서 56개월 근무하는 동안 선생님은 충남문협회장으로 나는 사무국장으로 함께 일하고 충남문학전집 5권을 발간하며 선생님의 유고시집 강둑에 이는 바람을 내는데 당시 공주대 김진규교수님과 함께 미력을 보탠일이 있다.

위의 시는 그 유고 시집 17쪽에 게재되어 있다. 선생님께서 어느 날 아버지의 한시(漢詩)가 있는데 같이 시집으로 묶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961월 서문을 쓰시고 거의 마무리를 하였는데 병이 발견되어 병마와 싸우시다가 그해 11월 두 번째 서문을 이렇게 쓰셨다.

 

너무도 슬픈 일이다. 이 시집을 편집해 놓고 병을 얻었으니 말이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병마의 칩입? 도저히 회춘을 기대할 수는 없는지. 병명은 이름하여 >>> 아직 원인 규명도 되지 않은 병이라니, 병상에서 교정을 보고 출판을 하고.....,어쨌든 계획한 일이니 그대로 세상에 내 놓으련마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올 무렵이면 나는 병상에서 내려오겠지......

 

혜화동 병실에서 쓴 서문은 끝내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고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3년이 지난 뒤 6남매가 마음을 합쳐 공주대 김진규교수님께서 주관하여 3주기에 맞춰 발간한 것이다. 살아생전 지극한 효심을 가지셨던 선생님이었기에 그 자녀들도 아버지를 본받아 효심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선생님의 때묻지 않은 서정이 넘쳐흐르고 삶에 대해 반짝임을 지닌 분(공주대 김진규교수의 발문에서)이라 그 앞에 나온 시집 타인의 얼굴에서처럼 선생님시의 전체적 분위기는 은은한 감동을 주는데 있다.

 

공주의 상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금강을 비롯해서 무령왕릉,공산성,선사유적지와 우금치고개,갑사,마곡사,곰나루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중에서 금강철교는 6.25때 북한군의 침략으로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폭파시켜 끊어 놓았다가 그 후 다시 이어 오늘이 이르고 있다. 금강다리가 끊어진 당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왕래를 해서 배를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 나룻배가 40여척이나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바로 이 금강철교를 바라보며 유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한다. 황포돛대를 달고 강을 건너던 시절 금강철교 넘어 붉게 물든 저녘 노을속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 모습이다. 엊그제가 어버이날이었다. 아마도 이 시를 쓸 때가 바로 그 쯤 되지는 않았을까. 나이를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어머니는 영원한 우리들의 고향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세상에서 가장 불러보고 싶은 이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름 어머니. 그 어머니를 오늘도 우리는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참 많이 보고 싶다.어머니,어머니,우리 어머니,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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