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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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7.2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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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내 그대를 사랑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 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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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달은 내 나의 사랑을 한 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되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내가 그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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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는 미당이 많이 아끼고 사랑한 시인 중의 하나다. 그 이유는 많은 시인들이 서구적 흉내를 내면서 시를 쓰는데 황동규는 젊은 나이임에도 한국적 지성을 잃지 않는 흔지 않은 젊은 시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약관 스므 살에 미당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으로 데뷔한다. 그러나 씨는 속이지 못한다고 그는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이기도 하다.

즐거운 편지는 그가 고등하교 3학년 때 그 보다 먼저 대학에 들어 간 여대생에게 반하여 쓴 시라고 한다. 아마도 그는 그 누구보다 감성적으로 조숙했는지도 모른다. 그 여대생과의 다음일은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의 글을 뽑아내려면 정신적으로 많은 시간을 몰입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가 스므 살에 이 글로 서정주의 추천을 받았으니 정작 이 글을 썼을 때엔 열여덟 살의 고3 이었다니 놀랍기도 하다.

황동규의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다음해엔 서울대 문리대 문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연상의 여대생을 사모해서 시도 쓰고 그 와중에 서울대 문학부도 수석이라니 황동규의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흘러 많은 시간이 갔는데 당시 열여덟 나이에 썼던 이 즐거운 편지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 만큼 진솔한 마음을 나타냈고 문장이 어렵지 않게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내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이렇게 문장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면서 어떤 그림을 연상시킨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외롭고 쓸쓸함까지 그 알 수 없는 무엇인가 그려지는 분위기 그 속에 나를 함께 갖다 놓고 싶은, 그래서 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까지, 물론 그 것은 그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이 비밀한 마음은 다음의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하고 끝을 맺는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일상속의 그 작은 사소함속에 있다는 것, 그것도 2연 끝에서 보듯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퍼 붓고가 의미하듯 매일 매일 그렇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주 보고 대 놓고 말을 못하고 외 둘러서 등 뒤에서 은근히 수줍게 그러나 일상적으로 매일 매일 마음으로 고백하는 이 시는 참 즐거운 고백일까 힘든 고백일까. 그러나 사랑은 쉬운 고백이든 어려운 고백이든 모두 사랑이기에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시속에서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 떨리는 행복한 사랑의 고백을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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