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오베라는 남자』
상태바
박명순의 영화이야기=『오베라는 남자』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8.12 2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늙은 남자의 마지막 사랑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오베라는 남자.

1인 가족 또는 독거노인 이야기. 영화보다 베스트셀러로 더 유명했던 이 남자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괴팍하고 이기적이고 냉정한 이 노인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고독한 인간의 보편적 사례일 수도 있는 이 남자의 사연이 옆구리 비집고 들어오는 건 영상언어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플레이보이 아들이 뿌려놓은 고물거리는 손자손녀를 거둬먹이다가 한겨울 냉방에서 아사(餓死)했던 옥희 할머니는 유년시절 옆집 친구 할머니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복지제도가 전무했던 70년대가 떠올랐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복지제도가 인간의 고독을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아수라판 인생에 속 시원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기에 커닝도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펼쳐지는 오베라는 남자의 사연은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사이에 둔 나의 이웃, 또는 100세 시대 우리 모두의 자화상으로 볼 수 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가 들려준 앉은뱅이 할머니의 실존도 고스란히 한국판이다. 불편한 몸으로 한 칸 살림살이를 반짝반짝 닦아놓고 쑥개떡까지 만들어놓고 유일한 방문객인 신부님 일행을 정갈하게 맞이한다는 깊은 산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 이야기이다. 불편한 몸으로 외롭게 늙어가면서도, 폐가 될까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 오히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워 접근을 차단한 채 자발적 고독을 선택한다. 도움의 손길에 먼저 손 벌리기는 죽기보다 싫기 때문에.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그렇다. 오베는 아내의 사망 후 따라 죽기로 결심한다. 둘이 의지하며 살던 세상을 혼자 감당하기는 엄두가 나지 않는데, 그 사연들이 영상이 되어 관객을 끌어들인다. 오베가 죽음을 결행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은 번번이 좌절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데. 비극의 한 장면이 화해와 소통의 과정으로 거듭나는 순간이 반복되는 것이다. 죽음을 결심한 오베를 삶의 세상으로 불러내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마음이 저절로 열리기 때문이다. 진한 인간미가 뚝뚝 떨어지는 명장면들도 코믹하게 그려진다. 자전거를 고쳐주고, 운전연습 제안을 수락하는 등. 우연히 철로에서 떨어진 사나이를 구하지만 죽음만이 해답이라 믿는 이 고집불통의 노인에게 세상은 어떻게 응답하는가.

서서히 오베라는 남자의 정체가 한 꺼풀씩 젊어지는 영상은 유년, 청년의 스토리와 현재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몰입도를 높인다. 먼저 어머니가 부재했던 유년시절이 드러나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고립적 삶은 사랑에 눈을 뜨면서 극복된다. 첫눈에 반한 여인, 신분차이를 극복한 결혼, 그리고 이어지는 불운들. 지혜와 사랑으로써 삶은 건강하게 회복되었으나 아내는 휠체어 신세를 져야했다. 그래도 둘의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고 행복했다.

 

이 영화에서 그녀들의 역할은 파워풀하다. 소냐와 파르바네, 이 두 여인이 중심적 배역을 담당한다. 소냐는 오베의 아내이고 파르바네는 오베의 이웃에 이사 온 이주민 여성인데 오베의 아내는 남편의 행복과 삶의 의미를 책임지는 구원자 여성의 이미지로 오베를 지배한다. 하지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후 홀로 남겨진 오베의 옆집에 이사 온 가족은 아랍계 이주민들이다. 무능한 남편 대신 가족을 책임지다시피 하는 파르바네, 그녀를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듯 아기 돌보기, 운전 등 소소한 일들을 돕다가 오베는 마음 좋은 할아버지, 고마운 이웃사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듯하다. 파르바네는 소냐처럼 유능하고 열정적인 인물은 아닐지언정 선량하고 따뜻한 이웃이다. 이 여인의 작은 배려를 통하여 오베는 아내 없는 삶에 조금씩 적응해 간다. 자신의 아기를 위해 만들었던 요람이 비로소 그 쓸모를 찾은 것처럼 오베의 고독함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연민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지금 이 순간에도 1인 가족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간다. 오베는 집이 있고 차도 있으니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소통의 단절과 고독한 일상은 형벌처럼 오베를 짓누른다. 오베에게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문제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세상이다. 가치관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원칙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지만 그 중요성은 여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삶은 관대하지 않다.

오베의 원칙은 때로 소통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자전거를 남의 집 앞에 세워둔 건 잘못이지만 그 이유가 여친 몰래 고장 난 자전거를 고쳐주기 위함이라는 소년의 고백을 듣고 오베는 손재주를 발휘하여 자전거를 고쳐준다. 고장 난 자전거가 도로를 달릴 때 오베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담벼락에서 죽어가는 고양이는 오베의 분신이다. 오베가 외면하고 방치했던 고양이가 오베의 거실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모습은 새롭게 생명을 부여받은 오베의 존재를 의미한다. 사랑 받는 이웃으로 거듭나는 오베는 소원대로 눈이 많이 내리던 새벽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줄에 목을 매달고, 차안에 가스를 가득 채우거나,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눴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자살 시도. 그는 침대에서 가장 편안히 죽음을 맞이한다. 억지로 시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는 생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영화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던진다.

(2015 제작, 스웨덴, 하네스 홀름 감독)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