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가 사랑하는 한 편의 시=김현승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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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가 사랑하는 한 편의 시=김현승의 눈물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9.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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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아주 슬픈 일을 당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보든 보지 않든 그냥 슬픈 마음에 그냥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문상을 왔던 B 시인이 조용히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김시인 뼛속까지 있는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울어봐요. 그럼 아마도 무언가 보일겁니다. 뼛속까지 있는 눈물이 울고 또 울어서, 또 흘리고 또 흘려서 이제는 다 말라 흘릴 눈물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면 정말 그 때는 무엇이 보인다는 걸까. 나는 그 무엇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흐르는 눈물을 어찌 할 수 없어 손 등으로 훔치고, 휴지로 손수건으로 닦아 내며 당시 오고 가는 손님들을 맞으며 보내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상황이 나를 한 참 동안이나 가엽은 존재로 만들어갔던 것이다.

눈물의 의미는 정말 무엇일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것,순수한 것,고결하고 아름다운 것 중 하나가 아닐까? 그 어떤 꾸밈이 없이 진지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아닐까? 가식 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 온 지난 날 들에 대한 회한과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잠시 곁으로 오는 착각을 갖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특히 헤어짐은 잠시 헤어짐도 있지만 영원히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예기치 못한 일로 헤어질 땐 그 많은 슬픔으로 인해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된다.

어느 책에선가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갑자기 자동차사고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슬픔과 눈물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교만의 대가로 이렇게 비참해지고 고통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럼 내 아들은 뭔가.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 에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단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란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게 낫다.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금 맹렬한 포악이 치밀었다. 신은 죽여도 죽여도 가장 큰 문제거리로 되살아난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나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殺意)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암 있어야 하구 말구. --이상 박완서 시인의 한 말씀만 하소서-(세계사,2004) 중에서 일부

나는 이 글을 읽는 내내 갑자기 떠난 아들을 생각하는 어미의 절규를 듣는 것 같았다.먼저 간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여기서 어미는 망연자실하며 갑자기 아들이 떠난 것은 신이 너무 사랑했기에 점지하신 것이라고 아픈 눈물을 가슴에 묻는 것이다. 여기 김현승의 눈물이란 시 역시 25에 떠난 아들에 대한 슬픔을 눈물에 녹여 쓴 시이다. 그 어떤 것보다 슬픔을 한 단계 승화시켜 신의 선물로 여겼으니 김현승 시인의 종교 역시 한 단계 높은 곳에 도달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결국 신은 눈물을 통해 슬픔과 고통을 알게 하고 눈물을 통해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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