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한 편의 시--구재기 시인의 으름넝쿨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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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한 편의 시--구재기 시인의 으름넝쿨꽃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2.02.1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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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넝쿨꽃

 

 

구재기

▲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이월 스무 아흐렛 날

면사무소 호적계에 들려서

꾀죄죄 때가 묻은 호적을 살펴보면

일곱 살 때 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의 붉은 줄이 있지

돌 안에 백일해로 죽은 두 형들의 붉은 줄이 있지

다섯 누이들이 시집가서 남긴 붉은 줄이 있지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많은 호적의 붉은 줄 속으로

용하게 자라서 담자색으로 피어나는 으름넝쿨 꽃

지금은 어머니와 두 형들의 혼을 모아 쭉쭉 뻗어나가고

시집간 다섯 누이의 웃음 속에서

다시 뻗쳐 탱자나무숲으로 나가는 으름넝쿨 꽃

오히려 칭칭 탱자나무를 감고 뻗쳐나가는

담자색 으름넝쿨 꽃

구재기, 권선옥, 나태주 3인시집 『母音』 (창학사, 1979)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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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아픔을 겪는다. 그 아픔은 주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는 것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혼자만의 것으로 마음속에 삭이면서 아파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전자의 경우엔 어쩌면 이쪽저쪽에서 함께 떠들고 위로해 주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그 아픔이 가라앉을 수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엔 혼자 삭혀야 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아픔이 오래가기 마련이다. 또한 그 아픔을 삭히는 중에 잘못하면 또 다른 아픔이 올 수도 있고 성격에 따라서는 평생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어 자기만의 특별한 치유법을 찾지 않으면 다른 나쁜 생각을 가질 수도 있기에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선 혼자만의 내공이 필요하다. 그 내공을 쌓기 위해서 당사자는 남다른 고독과 외로움을 극복하고 아픔을 한 단계 승화시키는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구 시인은 그런 단계와 과정을 거쳤기에 이 가슴을 울리는 한 편의 시 으름넝쿨 꽃이 탄생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으름넝쿨 꽃은 구 시인에게 있어선 아픔의 꽃인 동시에 치유의 꽃이다. 일곱 살 때에 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그 전에 백일해로 생명을 잃은 두 형, 그렇게 해서 호적등본엔 두 줄의 붉은 줄이 생겼다. 그리고 이어 시집 간 다섯 누이들, 만난 일은 없지만 구 시인이 태어나기 이전 벌써 두 형도 돐 안에 가시고, 그가 소년기를 거쳐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시기에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아픔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그리고 고독했고 힘들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아픔을 그 누구에게도 나타냈을 수 없었기에 그것을 삭히는 방법으로 공부하고 책을 보고 영화와 연극에 심취하고 급기야는 시를 쓰게 됨으로서 마침내 오랜 산고 끝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 으름넝쿨 꽃을 잉태시킨 것이다.

으름넝쿨 꽃은 어떻게 보면 구 시인만이 갖고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기도 하다. 나라는 나라대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있듯이 개인은 개인대로 개인의 역사,가족의 역사가 있다. 구 시인에게 있어서는 그 개인의 역사가 바로 어머니와 두 형을 잃은 슬픈 역사이다. 그런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한 단계 승화시켜 탄생시킨 것이 바로 담자색 으름넝쿨 꽃이다. 이는 오랜 시간 삭히고 고민한 뒤에 구시인 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꽃이다. 시인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담자색 으름넝쿨 꽃을 통해서 어머니와 대화하고 두 형과 시집간 다섯 누이들을 그려보는 것이다. 우리가 아프고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모 형제와 자식들이듯이, 가족이란 이름의 부모형제들이 있어 서로가 위로 받고 힘이 되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한다. 그게 바로 세상을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것으로 인해 홀 로 서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구 시인은 그가 태어난 집을 산애재라 이름하고 나무와 꽃과 시를 만들어가며 그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있을 것이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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