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역 칠천리" ... 실크로드 기행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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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역 칠천리" ... 실크로드 기행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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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0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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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길 공주대학교 명예교수 / 소설가

                                                               

▲ 시안 임동현의 진시황릉 입구
▲ 시안 임동현의 진시황릉 입구

새벽 3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사람의 몸은 기계와 달라서 쉽게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2시 반이 되어 일어났다.

아내가 마련해 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한 분을 빼고 모두 모였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잡은 손 사이로 모두 무사히 잘 다녀오자는 무언의 출정식을 했다.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설렘으로 시작되는 게 보통인데 내겐 그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무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증거인 것 같다.

비몽사몽의 언저리에서 해매다 보니 어느 새 인천 공항이다. 딱 두 시간 만에 그 먼 거리가 사라졌다. 세상이 좋아진 것인지, 반대로 나빠진 건지 알 수 없다.

여행사 직원과의 미팅 시간은 7시다. 기다려야 한다. 참아야 한다. 편리한 대신 지불해야 할 대가다. 7시에 여행사 사람이 나왔다. 직원이 아니라 사장이다. 여행사 이름부터 서역 여행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회사답다.

단체 비자 설명과 함께 우리 일행이 여행 내내 먹을 수 있는 김치와 장아찌 등 반찬 한 박스를 챙겨 주었다.

수속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황태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면세점을 서성거리며 기다리다가 9시 넘어 탑승을 했고, 비행기는 9시 반 정시에 출발했다.

주는 대로 기내식을 받아먹다 보니 오늘은 형식상 아침을 세 번 먹는 꼴이 되었다. 호사인가, 혹사인가, 알 수 없다.

현지 시각 11시 반에 시안의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 후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탔다. 시안의 옛 이름은 장안이다.

장안은 고유명사지만 우리나라 서울처럼 수도라는 뜻의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여기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였다.

실제 이 도시는 천 년 넘게 중국의 여러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고도다. 중국의 서쪽에 위치한 이 도시는 이슬람, 인도, 유럽의 문화를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여러 인종과 문화가 들어왔다. 이런 이색적인 외래문화는 중국 고유문화와 어울리면서 중국의 수준을 격상시키는 데 크게 작용하였다.

당시 장안은 중국의 수도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도시였고, 독특하고 수준 높은 국제 문화도시였던 것이다.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때가 되었다고 점심을 먹으란다. 절에 간 색시처럼 따를 수밖에 없다. 특유의 향신료가 풍기는 음식으로 중국 땅 첫 끼니를 해결하고 나니 배가 든든하다. 배가 부르고, 꼭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만사태평이다.

거기에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게다. 그러나 가이드는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의 채근에 무거운 발길을 떼야 한다. 마치 주인이 아랫사람 일을 시키는 것 같다. 그게 그의 일이니 탓할 수도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돈과 시간을 내서 여행을 왔음에도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하고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돈을 내고 고생을 해야 하는 게 여행이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 발굴되어 전시 중인 병마용들. 그 엄청난 규모와 양이 관람객들과 대비된다.
▲ 발굴되어 전시 중인 병마용들. 그 엄청난 규모와 양이 관람객들과 대비된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임동현에 있는 진시황의 능이다. 진시황은 아방궁이나 분서갱유라는 말과 함께 흔히 사치와 폭정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전체 행적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 일방적으로 부정적 평가로만 매도당해야 할 인물인지는 의문이다. 그는 아버지 장양왕이 즉위 3년 만에 세상을 떠나 13세에 진나라의 31대 왕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으니 당연히 섭정이 필요했다.

그의 생모인 조희와 여불위가 권력을 좌지우지했다. 조희는 원래 여불위의 첩이었는데, 그의 부친에게 정략적으로 오게 된 여자라 둘은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후 반전이 일어난다. 그는 그들을 사정없이 축출하고 친정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그는 원교근공 정책으로 이웃 나라들을 하나씩 정복하여 오랜 동안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던 중국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영토뿐 아니라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도 하나로 만들었다. 군현제 실시와 더불어 도량형과 문자의 통일, 도로와 수레 개선, 만리장성 축조 등으로 명실상부한 통일 국가를 완성했다.

사실상 현재 중국의 토대를 만든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그의 앞에 거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말이 곧 법이고 그의 행동이 곧 규범이자 척도였다. 그는 드디어 무소불위의 최초의 황제가 되었고, 그것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가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절대 권력의 무상함이다. 이 무지가 결국 그 자신은 물론 그가 만든 나라를 무너뜨렸다. 결국 그는 오만과 무지로 인해 초라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만 것이다.

▲ 관람객들이 현재 진행 중인 발굴 작업을 관람하고 있다
▲ 관람객들이 현재 진행 중인 발굴 작업을 관람하고 있다

불로장생과 영생의 망상으로 건설했던 화려한 무덤 속에 오명과 함께 남은 그는 과연 영웅인가, 아니면 한낱 폭군에 불과한가.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폭군으로 기억되든 영웅으로 남든 그가 남긴 자취가 가볍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무리 강고한 절대 권력이라 할지라도 무지와 교만 앞에서는 한 순간에 소멸해 버리고 만다는 것,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게다.

그가 묻혀 있는 능은 작은 산이다. 영생불사를 꿈꾸었던 그가 생전에 만든 이 무덤은 웬만한 마을 하나(7×8)일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생전에 누리던 호사를 죽은 뒤에도 누리고자 하는 욕망으로 지하의 아방궁을 만들었으니 그 구조와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2천 년 넘게 땅속에 묻혀 있던 이 무덤의 일부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능 자체는 아직 건드리지도 않았고, 현재 발굴된 것은 무덤을 지키는 병마용이 묻혀 있는 갱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발굴된 갱도와 같은 게 수백 개 넘게 있으리라고 본다.

현재의 기술로는 그것들을 온전히 발굴, 보존할 수 없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니 그 속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현재 발굴되어 공개 중인 1호 갱과 지금도 작업이 진행 중인 2, 3호 갱을 놀라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엄청난 숫자의 병마용과 전차, 말 등을 보면서 경탄보다는 솔직히 질린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무엇이든 한두 개였을 때가 귀하지 너무 많으면 대접을 못 받는 게 세상 이치 아니던가. 날은 덥고 광활한 지역을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탓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화청지 앞의 공원에 조성된 소규모 비림. 역대 유명한 인물들의 글을 다양한 서체로 만나볼 수 있다.
▲화청지 앞의 공원에 조성된 소규모 비림. 역대 유명한 인물들의 글을 다양한 서체로 만나볼 수 있다.

그곳을 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화청지다. 이곳은 원래 주나라 때부터 왕과 귀족이 애용하던 온천이었는데, 당의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화청궁이라는 별궁을 지은 후 더 유명해졌다.

양귀비는 흔히 서시, 왕소군, 초선(혹은 우희)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녀로 알려져 있지만, 당을 멸망에 이르게 한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기도 한다. 양옥환은 애초 현종의 아들에게 시집을 온 여자였는데, 그의 시아버지 눈에 들어 후궁이 된 후 결국 실질적인 왕비의 지위에 올랐다.

당연히 그 가족들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이 여자에 관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여러 기록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추산해 본 결과 155센티의 키에 65킬로 정도의 체중이 나왔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을 만큼 요즘 기준으로 보면 미인으로 보기 어려운 이 여자는 어떻게 그 지위에 올랐을까. 양옥환이 귀비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 외모가 현종의 사별한 왕비와 닮았다는 것과 함께 어린 시절 은밀히 배운 호선무가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 양옥환은 이 호선무 춤으로 현종의 마음을 끌어 귀비의 자리에 올랐다 한다.
▲ 양옥환은 이 호선무 춤으로 현종의 마음을 끌어 귀비의 자리에 올랐다 한다.

경위야 어쨌든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랑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사랑엔 국경도 없다 해도 35세나 차이가 나는 이들 남녀의 사랑은 상식에 반한다.

그럼에도 이 세기의 불륜이 세상에 일견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남게 된 데는 백거이라는 시인이 쓴 장한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의 사랑을 이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은 그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불륜 자체를 미화하는 것과 불륜을 아름답게 묘사한 문학 작품을 같은 차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게 문학의 특성이고 문학의 힘이기 때문이다. 양귀비는 안사의 난으로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비극으로 세상을 마감했지만, 시대를 외면한 욕망과 사랑은 그 무덤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겨 주고 떠났다.

▲ 현종과 양귀비의 희대의 사랑이 펼쳐진 화청궁
▲ 현종과 양귀비의 희대의 사랑이 펼쳐진 화청궁

온천 출수구와 사용자가 정해진 5개의 온천탕, 양귀비가 머리를 감고 말렸다는 건물과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모습의 입상, 뒤의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과 작은 연못 등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 호선무를 추는 양귀비의 대형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지나는 길에 소규모 비림(碑林)을 잠깐 구경하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 백거이의 “장한가”를 모태로 만든 대형 공연물. 연극과 무용과 서커스 등을 하나로 묶은 상업적 공연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백거이의 “장한가”를 모태로 만든 대형 공연물. 연극과 무용과 서커스 등을 하나로 묶은 상업적 공연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저녁 식사 후 다시 화청궁으로 들어가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주제로 한 공연을 관람했다. 출연진만 약 2백여 명에 이른다는 이 공연은 한 마디로 중국다운 물량 공세의 표본 같았다.

뮤지컬과 서커스와 연극을 하나로 합친 형식의 이 대형 작품은 한 번 공연에 예약한 관객 2천 명이 감상하게 되어 있다.

관람료가 우리 돈으로 5만 원 정도 되고 매일(주말엔 2) 공연한다니 그 수입이 제작비를 능가하는 상업적 성공의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채로웠던 것은 뒤에 있는 산 전체를 조명을 이용하여 순간적으로 별과 달 모습의 하늘로 바꾸는 기발한 발상,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수평, 수직 이동 무대, 물과 불을 이용한 사실적 장면 재현 등이었는데, 역시 이런 대규모 공연을 지속해 온 노하우가 축적되어 이루어진 결과 같았다.

▲ 작품 공연 중 화청궁 뒤의 산 전체를 조명을 이용하여 하늘로 바꾸는 장면
▲ 작품 공연 중 화청궁 뒤의 산 전체를 조명을 이용하여 하늘로 바꾸는 장면

작년에 와서 이 공연을 보았던 우리 일행 중 한 분의 말에 따르면 그 내용 중 달라진 부분이 많다고 한다. 이는 고정된 대본만 고집하지 않고 관객의 반응 혹은 작품성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시로 수정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게다.

공연 내내 눈길을 사로잡는 현란한 무대 변환과 조명을 활용한 현실과 환상의 호환 효과, 속도감 있는 빠른 진행, 이런 것들이 많은 관객을 유인하는 요인일 듯한데, 사실 그 내용으로 보면 식상할 역사 이야기가 이처럼 대중적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게 된 요체는 무엇일까. 예술, 특히 공연 예술을 하는 분들이 깊이 성찰하고 공부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11시 넘어 호텔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먼 거리를 이동해 와 그 유명한 역사 인물 진시황과 양귀비를 만나고 또 정신을 현란케 하는 공연까지 보았으니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나이가 많다고 혼자 쓰는 방을 나에게 배정해 주니 다른 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나 그 대신 외로움은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인생 또한 그렇지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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