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와 버지니아 울프가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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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와 버지니아 울프가 만나면?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3.06.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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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워스 포스터. 자료제공=네이버영화
▲디아워스 포스터. 자료제공=네이버영화

영화 관련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일상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하루에 만나는 영화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변화에 갈등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무대는 사이버 공간의 무한성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책꽂이 공간이 꽉 찼을 때 그 틈새를 비집기가 어려워지면 덜어내고 채워야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책꽂이 위아래와 주변에도 쌓아보지만 언젠가는 책꽂이를 바꾸던지 그게 어려우면 그 내용물의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일상을 책꽂이의 내용물이라 한다면 그 안에는 독서와 글쓰기와 영화라는 주제가 거의 대부분인데 각각의 황금 비율적 배분이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갈등의 과정 속에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만나면 책과 영화를 한 번에 만난다는 기대감이 솟구친다. 노벨문학상 작품이라든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거의 영화제작이 이루어졌다는 건 최근에야 알았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그렇게 만난 영화들은 작가와 작품까지 만나도록 이끌어주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영화는 삶의 위안물이자 치유제이며 휴식을 도와주는 즐거움을 제공하지만 때로는 문학 공부까지 할 수 있음을 체험하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 문학과 더불어 만난 영상들은 숙제의 부담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성취감 또한 그 이상의 묵직함으로 다가온다는 걸 말이다.

영화 디 아워스는 그 중심에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댈러웨이 부인이 있지만 마이클 커닝햄이 쓴 동명 원작 소설에 충실하게 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복잡 미묘한 미로 찾기의 재미가 풍성해진다. 각기 다른 시대 세 명의 여인이 보내는 하루의 일과를 다루는 설정이다. 1951년 미국의 로라, 1928년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1980년 미국의 댈러웨이 부인. 하루라는 시간적 흐름을 통하여 보여주는 이들의 생애는 어떤 한두 개의 단어로 표현하기는 곤란하다. 특히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들먹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폭넓은 의미에서 여성주의 영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 명 여인의 삶을 영화는 친절한 방식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다소 난해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여성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구성과 편집이 만들어낸 영상은 우리를 인생의 본질로 이끌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연기, 영상미 등 작품 완성도가 높아서 책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선보인다.

댈러웨이 부인은 시대의 선각자이자 천재적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제목이며 그 주인공이다. 울프가 현대 소설론이라는 새로운 소설 작법의 이론을 내세우면서 착안하여 이전의 스토리와 플롯의 형식을 탈피한 의식의 기법으로 쓰였다.

영화는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담고 있으며 이는 원작 소설 디 아워스를 영화화한 것이니 책과 영화의 만남은 세 개 꼭짓점이 맞물리면서 입체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세 꼭짓점에서 30년 간격의 주인공들이 소통하는 것이다.

영화를 심도 있게 읽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울프의 생애를 공부하고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원작 소설까지 읽어야 할 것인가? 당연히 그럴 필요는 없다. 각자의 몫이니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만으로 느끼고 즐기고,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게 잘 안 된다.

영화가 내 삶으로 깊게 들어와서 일상을 파고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 영화에서 문학으로 인생으로 그 의미를 확대하고 싶어진다면 버지니아 울프를 만날 수도 있고, 고전 작품을 가까이할 수도 있다. 의외로 울프의 소설은 현대 소설 못지않게 잘 읽힌다. 그 디테일한 묘사와 문장에 담긴 철학과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지인이나 작가들조차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나는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를 읽어보길 권유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만나는 시간, 우리는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지도 모른다.

1951년 미국의 로라는 델러웨이 부인의 애독자로 등장한다. 남편과 아이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갈등으로 괴로워한다. 우리는 로라의 가출과 자살 시도에 선뜻 동조하기 어렵다. 어린 아들과 갓 난 딸을 버린 엄마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1928년 실존 인물 버지니아 울프의 하루를 만나면서 조금은 영화에서 설정한 미로 찾기의 길이 보이는 듯도 하다. 평생을 병마와 싸워온 천재 작가. 남편과 결혼하면서 섹스를 하지 않기로 약조한 부부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 결국 자살로 마감한 버지니아 울프의 고독하면서도 위대한 삶을 통하여 특별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인생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들의 삶도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한 삶임을 상기하게 된다.

1980년대를 살아가는 델러웨이 부인의 삶은 이전 세대 두 여인과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동성 연인과 살아가며 딸을 키우는 50대 여성의 삶에는 이전 세대 여인들, 즉 로라와 버지니아 울프가 죽음 대신 선택했던 가혹한 삶의 당당함이 빛과 그림자로 투영되어 있다.

좋은 영화는 끝없이 나의 삶을 반추하며 의미 있는 질문을 샘솟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영화는 100년 전 우울증과 정신분열에 시달리면서 영국의 몇몇 도시와 시골을 전전하며 살았던 인기 소설가이자 동성애자이며 진보적 지식인 버지니아 울프를 재해석하는 힘이 있다. 때로는 영화를 아끼며 보듬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 되고 삶의 힘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디 아워스는 세상의 잣대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을 향해 당당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현대인(굳이 여성에 국한할 필요가 있을까?)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나침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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