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화목한 『우리집』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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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화목한 『우리집』입니다만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3.11.08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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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의 영화에서 만나는 어린이 주인공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닌, 독립된 인간으로 등장한다. 소름 끼칠 만큼 디테일한 어린이의 대화는 그 자체로 우리 사는 세상의 부분이자 전체이다. 그 독특함의 세계는 윤가은 영화의 특장(特長)이 된다. 이혼을 앞둔 가정의 불화 또는 어른이 없는 집에서 먹거리의 해결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밝고 명랑한 기운, 달리 말하자면 영화의 세계는 그 대책 없는 생기를 포착하는 힘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아픔을 겪을 만큼 겪었는데도 해맑은 어린이의 모습으로 웃고 떠들면서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어른 조력자나 구원자의 설정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리얼리즘적이다. 어린이 스스로 어른들이 만들어낸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거나 해결책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어른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음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잔잔하게 보여준다.

어린이들만으로 화면이 충만한 것은 우리들 모두의 시선을 주목하게 만드는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어린이의 관점을. 어린이는 현실을 스스로 겪은 만큼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니까. 그러기 때문에 불필요한 왜곡이나 지나친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 그리하여 생기를 잃지 않는 것, 그 세계에 우리는 하염없이 빨려든다.

『우리집』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자아이는 어쩌다 보니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하나는 큰소리로 싸움을 일삼는 맞벌이 부모와 살면서 밥을 차리고 반찬을 만든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음식을 만들고 식탁을 차려서 함께 먹는 일이 집을 지키는 일이라고 은연중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자기라도 해야 한다는 눈물겨운 노력을 벌이는 하나는 ‘선행상’을 받는 어린이다.

유진과 유미는 어쩐 일인지 부모는 도배 일을 하러 지방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자주 집을 비운다. 삼촌이 있기는 한데 영화가 진행되는 시간 어른은 등장하지 않는다. 유진은 소년가장처럼 동생 유미를 보살핀다. 어른이 없는 상태에서 집주인과 부동산 아저씨와 새로운 세입자들이 집을 보러 올 때마다 불안에 떨면서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마도 가장 아픈 대사는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 너네집도.”가 아닐지. 집을 지키는 건 어른의 몫인데 어린이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데도 그 절망을 모르는 대책 없는 결연함 때문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다. 무책임한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일찍 철이 든 어린이를 보는 건 안쓰럽다. 하지만 영화의 온도는 교훈을 이끌거나 불편한 심사를 자극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우리 사는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을 보여주기만 한다. 누구나 유년시절을 겪는다. 어쩌면 잊어버렸던 기억들, 어른들이 무심히 던졌던 말들이 송곳처럼 가슴이 찔렀던 순간들을 소환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나는 가족여행에 집착한다. 예전에 가족여행 이후 엄마 아빠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기억 때문이다. 누구나 화목한 가족을 꿈꾸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부모의 이혼은 대부분의 경우 아이가 되돌릴 수 없다. 그 간단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노력, 그게 하나의 몫일뿐이다. 쓸데없다. 무가치하다 쉽게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픈 만큼, 조금씩 성장해야 하는 건 아이의 운명이다.

유진의 부모님은 안정된 직장이 없어서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고 있다. 다른 세입자에게 집이 넘어갈 위기에도 연락조차 어렵다. 이사를 간다는 건 친구를 잃는 것이며 지금까지 키워 온 방울토마토라든지 소중한 것들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집을 지키기 위해 연락이 닿지 않는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와 유진 유미가 여행을 떠나는 마무리는 뭐랄까 동화적이면서도 조금은 속이 후련하다. 하나는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가족여행을 바랐건만 오히려 이혼여행을 실행하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무작정 집을 나온다. 유진이네 집을 지켜주기는커녕 우리집조차 힘에 벅차다.

종이상자를 하나씩 쌓아서 집을 만들고 계란판으로 지붕까지 완성한 집을 보고 웃는 장면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지붕에 색깔도 칠해서 완성한 종이집을 들고 하염없이 걷는 장면 또한 마음이 아프다. 종이집은 ‘집’이라는 환상과 현실의 거리감을 확인하는 장치이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끙끙대며 짊어지고 온 종이집을 결국에 길가에 버리고 만다. 그 과정에서 하나는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결국 부모님을 만나지 못한 유진이는 하나와 다투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새로운 가족처럼 보이지 않는 끈끈한 관계를 쌓게 된다.

아이들이 집을 지키기 위해 들였던 노력들이 결국은 종이집처럼 쉽게 부서지는 것들임을 우리는 자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우리집』 또한 영원할 수 없고, 어쩌면 허상이라는 것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관계가 지닌 절대적 의미 또한 관념일 수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유진이네는 이사를 갈지도 모른다. 하나의 부모는 이혼하겠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로 남아 있다. 유진이 · 유미와 하나의 만남은 가족 너머의 가족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생뚱맞게 튀어나온 유진이의 대사 “우리가 왜 남이야!”의 잔잔한 울림이 따뜻하다.

유진이가 하나에게 묻는다.

“하나언니, 앞으로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 우리가 이사 가도 우리 언니 해줄 거지?”

“응, 앞으로도 계속 유진이 유미 언니 해줄 거야.”

이들의 사이에는 가파른 계단이 가로놓여 있다. 날마다 오르내려야 하는 수많은 계단들. 부모의 이혼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잦은 이사 외에도 다양한 난관들이 닥쳐올 것이라는 예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표정은 환하다.

윤가은 감독의 다른 영화들, 가령 『우리들』(2017)이나 『콩나물』(2013)도 함께 추천한다.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친구처럼 윤가은 영화의 잔잔하면서도 속 깊은 울림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장담하면서.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 어른도 어린이도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에서 동등하다는 것.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 자라난다는 것. 한국사회에서 교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타자화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어린이가 이토록 의젓하게 온몸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 어린이는 늘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의외로 어린이는 어른보다 단단한 구석이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우리 밥 먹자. 얼른… 든든하게 먹고 진짜 여행 준비하자.”

마지막 장면이다. 하나의 바람대로 함께 밥을 먹는 시간.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 그토록 많은 갈등의 시간들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기약할 수 없지만 지금 여기서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는 것. 영화는 화목한 결말을 유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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