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한 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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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한 편의 시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3.11.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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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杜甫의 추흥秋興.1

참 이슬 내려

단풍은 물드는데

 

쓸슬한 무산巫山의

골짜기를 가면

 

강 물결 일어

하늘에 치솟고

 

변방邊方을 어둡게

뒤덮는 구름

 

또 국화는 피어

다시 눈물 지우고

 

배는 매인 채랴

언제 고향 돌아 가랴

 

----이제 추위가 오리라

 

백제성白帝城을 흔드는

다듬이 소리 다듬이 소리

-----

 

가을이다. 겨울 입구에 들어섰는데 참나무 우거진 숲길을 걸으면 낙엽 밟는 소리가 아직도 늦가을 낙엽 냄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오늘 천안문학인대회에 가서 어사 박문수의 길을 걸었다. 박 어사의 옛집 담을 끼고 뒤돌아 가다 보면 참나무 우거진 은석산을 향하게 되는데 그 산길은 아직도 낙엽이 소복히 쌓여 가을 산길을 걷는 맛이 새로웠다. 지난밤의 서설로 아직 축축한 느낌이 났지만 그래도 낙엽이 제대로 쌓여 있어서 늦가을의 낙엽 진 산길을 걸으며 그 낙엽 밟는 소리가 모처럼 가을 강을 걷는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가을 산길을 걸으며 가을 맛을 느꼈다면 이번에는 가을 어느 날 두보를 만나러 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현암사에서 낸 이원섭 번역의 당시(1965년 11월 발행)를 열어 보면 가을을 사랑한 추흥秋興1,2,3등 연작으로 쓴 두보의 가을 시를 만나게 된다. 그 중 추흥 1은 가을시의 백미를 이루는 듯하다.

 

이 시는 AD 766년 두보가 서각이란 곳에서 살고 있을 때 쓴 시인데 그곳에는 무협이란 길이 160리나 되는 계곡이 있어 한낮이 되어야 해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해가 짧아지는 가을에 아주 깊은 산 속 험한 곳에 살면서 낮에 잠간 해를 보는 깊은 산속이니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지 상상이 간다. 그런 속에서 두보는 계곡에서 내리치는 강물이 바위에 부딪혀 일어 나는 물방울이 수증기나 안개로 번져 제대로 앞을 못 보는 상황이 되니 물방울들이 합쳐저 짙은 안개로 변하고 그 물방울들이 주변의 국화 꽃잎에 떨어지자 그것을 슬픈 과거에 떨어지는 눈물이라 표현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은유의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표현하고 있는 다듬이 소리 다듬이 소리 반복은 우리의 시적 정서를 유년의 세월 속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다듬이 소리는 다듬이돌 위에 지금 막 빨래를 해서 조금 덜 말린 상태에서 몇 겹으로 접은 얇은 옥양목이나 광목을 곱게 펴기 위해 다듬이질할 때 나는 방망이와 돌의 만남에서 오는 소리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서로 마주 앉아 다듬이질할 때 천천이 두드리다가 점점 빨라지는 듯 싶다가도 다시 느려지기를 반복하는 소리가 마치 음악 할 때 내는 장단 맞추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이것을 요즘 음악 하는 사람들이 활용하면 참 좋은 효과를 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틀림없이 매스컴에서 사회적 이슈처럼 우리의 전통 어머니들의 생활 속 일부가 음악으로 재현되다 라고 큰 제목의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두 여자가 마주 앉아 다듬이질을 강약으로 또는 빠르게 느리게를 섞어가면서 반복하다 보면 난타처럼 좋은 음악적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한다.

 

두보는 늦가을 이 추흥秋興을 연작으로 썼다. 배가 매여 있으니 언제 고향 가느냐 하고 더구나 추위가 올 텐데 하면서 애절한 향수를 그렸다. 그러면서 국화가 지는 것은 지난 세월에 대한 슬픔으로 나타내고 배를 매어 놓았으니 고향을 못가는 향수로 그리고 있다, 이때 멀리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는 이 시의 절정을 이루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이 시는 크기나 무게가 두보의 시 중에서도 대표작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든다. 이렇게 두보杜甫는 단어 하나하나 끌어다 쓰는 것들이 신중해서 좋은 작품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쓸쓸함을 말한 두보杜甫의 시를 읽어보면서 나 또한 산중에 홀로 있어 엄습해 오는 외로움을 달래 본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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