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
샌프란시스코 동쪽에 있는 다리 베이 브릿지를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마침 여자기사가 동양계이기에 서툰 영어로 이것저것 대화를 하였다. 몽고의 대학생으로 택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대고 공부한단다. 동양계이기에 아시아 쪽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남북한 문제가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세계 많은 사람들은 남북한이 금방 전쟁이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인가보다. 그래서 “걱정 없다 북한사람들이 말을 험하게 막 해서 그렇지 금방 전쟁이 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만약 전쟁이 난다면 남북한 모두가 다 죽는다. 그리고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에도 엄청남 피해가 닥칠 것”라는 내용으로 대화를 하였다. 그 여자 기사도 북한의 핵무기(Nuclear weapon)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이스트 베이와 오클랜드를 연결하는 베이브릿지의 총 길이는 13.5Km로 골든게이트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다리 중간의 트레져 아일랜드에서 보는 전망이 아름다워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의 야경을 한번 촬영하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않아 야간 촬영을 하지는 못했다. 이곳은 한가로운 해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해변 달리기를 하고 바다에서는 요트와 카야크가 한두 대 한가로이 떠도는 평화로운 바다였다. 그 바닷가 전망 좋은 식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음식을 주문했는데 샌프란시스코의 Oyster(굴요리)가 유명하다고 하여 14$ 짜리 굴요리를 시켰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나온 음식을 보니 접시에 달랑 굴 8개 그리고 빵 한 조각이었다. 할 수 없이 빵으로 배를 채우고 비싼 캘리포니아 굴은 맛만 보고 식당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데 2시에 페리 빌딩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린다. 옛날 페리의 선착장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새롭게 문을 연 쇼핑과 음식의 복합 매장이다. 한쪽에는 이 건물의 역사가 시작된 시계탑 박물관도 있고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유기농 식재료로 음식을 조리하는 많은 레스토랑이 있어서 요즈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관광지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높다는 트랜스 아메리카 피라미드를 찾아갔다. 높이 256m, 48층의 건물로 피라미드 형태의 하얀색 건물이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곳에서 보아도 돋보이는 건물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는 꼭 등장하는 곳으로 낮에는 건물을 덮고 있는 알루미늄 판이 햇빛을 반사하여 눈부시게 빛나고 밤에는 6,000여 개의 방에서 불빛이 흘러나와 아름다운 야경을 만드는 곳이다. 그 최고 빌딩 옆에 공원(Trance America Redwood Park)이 있는데 스기나무 숲이 엄청 우거졌다. 도심에 그리고 최고 빌딩 옆에 아름다운 숲이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그동안 몇 시간을 걸어서 지친 다리도 쉴 겸 공원의 벤치에서 1시간가량을 누워 휴식을 취하였다.
그곳에서 걸어서 차이나타운으로 향하였다. 이곳 차이나타운은 중국계 8만의 인구가 모여 사는 곳으로 미국에서 최대의 차이나타운이며 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중국인 거리이다. 중국 노인들의 휴식처 공원에 많은 중국인들이 휴식과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는데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장기, 할머니들은 거의가 포카놀이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장기판을 보니 우리나라 장기와 거의 흡사하였다. 차이나타운 게이트에는 1969년 중국이 샌프란시스코시에 기증한 현판으로 중국 혁명의 지도자 쑨원의 캐치 프레이스였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글이 쓰여져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大同사상에서 나온 말로 미국과 중국민이 잘 어울려 살자”라는 뜻의 의미가 있단다. 이곳 차이나타운에서 Canon 충전기와 사진기 렌즈에 부착하는 PL 필터를 샀는데 PL 필터는 처음 600$을 부르다 나중에 100$까지 떨어져 할 수없이 그 물건을 샀는데 중국인의 끈질긴 상술을 몸소 체험한 좋은 경험이었다. 4시 경에 호스텔에 들어와 좀 쉬는데 아래층에 있는 네델란드 친구는 아침부터 계속 자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젊은 사람이 맥을 못쓰는 것을 보니 시차 적응을 잘못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바로 시차에 잘 적응하였는데 내 건강은 내가 보아도 대견하였다.
♣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오늘은 고생을 많이 하였지만 그래도 여유를 부리기 위해 화원이 들러 장미꽃을 한 송이 사서 들고 다녔다. 옛날에 유명한 노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꽃으세요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라는 유명한 노래가 생각나서였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꽃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스코드 멕켄지(Scott Mackenzie)의 노래로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인기를 누렸던 노래이다. 우리나라도 나의 대학시절인 1970년대 장발과 청바지, 통키타로 대변되는 히피(hippie)가 한때 유행하였는데 이 히피 문화는 1960년대 중반 태평양 연안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샌프란시스코는 뉴욕과 함께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인권운동 등의 사회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던 곳으로, 이 영향으로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앤드 애시버리(Haight & Ashbury)에는 진보적인 시인, 화가, 음악가 등 문화예술인들과 이에 동조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집단 거주하게 됨으로써 히피들의 온상이 되었다. '꽃의 아이들'(flower children)로도 불린 히피족(族)들은 기득권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거부하고 '사랑과 평화와 공동체적 삶'을 이상으로 하면서, 노랑, 빨강, 파랑 원색의 의상과 덥수룩한 장발 차림으로 자연과 예술에 대한 사랑을 일상적으로 실현하였다. 이때 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 노래 그래서 전 세계로 퍼진 노래가 바로 스코트 맥켄지의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였다. 비록 여자가 아니라 머리에 꽃을 꽂지는 못하지만, 꽃 한 송이라도 들고 다니는 여유를 부려보자고 20$을 주고 장미꽃을 사서 들고 다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