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이 영웅인 시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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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이 영웅인 시대를 위하여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4.02.19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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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네이버영화

나는 성공한 자의 화려한 외면보다는 실패자의 그늘과 그들의 이루지 못한 이상을 사랑한다. 권력에 주눅 들지 않고 명성에 연연하지 않는 재능 있는 무명의 예술가를 사랑한다. 그들이 고집하는 진정성이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운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 절반 이상이 이 그룹에 속하기 때문에 나는 더욱 그들을 사랑한다. 그 힘으로 마케팅의 선봉에 서서 스스로를 상품화의 도구로 일삼는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를 비판한다. 여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얻어낸 그들의 권력과 성공에 연민을 느낄지언정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갈채를 보내지는 않는다.

그러함에도 성공한 인물에게의 끌림을 거부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존재 전부를 걸고 부와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성취해낸 것에 인색할 수가 없다. 특히 그가 여성일 경우에는 더욱 외면하기가 어렵다.

영화 『조이』를 보면서 내내 생각했던 것이 이러한 성공과 실패, 빛과 그림자의 관점이었다. 조이는 발명가이자 홈쇼핑 호스트로 진출하여 크게 성공한다. 영화의 대부분은 조이가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예술의 존재 이유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열망, 끝없는 도전에의 유혹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끝까지 실패자로 남을 조이(실패해도 멋진 조이)를 응원했었다. 그런데 실화를 담았다는 자막이 뜨면서 맥 빠지는 기분이었다. 소설이나 영화의 스토리가 실화냐 아니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생존인물을 작품화하는 경우, 특히 성공신화를 다룰 경우는 뭔가 미심쩍은 것이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작품 속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 인물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몰입이 어렵다. 또한 지나치게 맹목적인 동일시의 위험성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다양한 인물에 매료되고 그 안에서 누리는 또 다른 삶에 빨려드는 순간을 사랑한다. 영화에서 몰입했던 인물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해 헤매는 일상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생존 인물의 성공 신화를 다룰 경우는 냉정한 입장을 견지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못한다. 영화와 현실을 분명하게 자르지 못하는 경계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혼한 부모님과 전남편, 할머니와 두 아이까지 떠안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싱글맘 조이(제니퍼 로렌스 분)에게도 어린 시절 발명가의 꿈이 있었다. 어느 날, 깨진 와인잔을 젖은 걸레로 치우다 손을 다친 조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면으로 된 대걸레를 만들어 손을 다치지 않고 걸레는 쉽게 짜는 것! 조이는 상품제작에 돌입한다.

그러나 사업 경험이 전무한 조이는 기업과 투자자로부터 외면 받으며 여자에게 더욱 가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벽 앞에서 매번 좌절하게 된다. 이때 전 남편 토니의 소개로 홈쇼핑 채널 QVC의 경영 이사인 닐 워커(브래들리 쿠퍼 분)를 만나게 된 조이는 기적적으로 홈쇼핑 방송 기회를 얻게 되고 5만개의 대걸레를 제작한다. 하지만 단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파산 위기에 처하지만 자신이 홈쇼핑에 출연하여 ‘손으로 짜지 않는 대걸레’는 히트상품으로 재탄생한다. 특허 관리와 초기 계약서에 약점을 잡혀서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정면승부를 벌여 마침내 미국 홈쇼핑계에서 최고의 여성 CEO에 등극한다.

대걸레와 옷걸이로 미국 홈쇼핑 최고의 CEO 등극에 성공한 조이 망가노의 실화를 소재로 삼은 영화 『조이』는 단순한 성공신화가 아니다. 인물의 성장과정을 디테일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현대판 여성인물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떠올리게 한다. 조이는 4대가 함께 살아가는 집안을 이끌어가는 가장 역할을 기꺼이 수행한다. 할머니의 절대적 믿음을 제외하면 가족들은 조이에게 희생만을 요구한다. 그런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조이는 가족들을 챙기면서 당차게 자신의 꿈을 키워나간다. 발명과 특허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연필로 그림을 그려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직접 용접을 하는 장면이나 평상복을 입고 홈쇼핑 스튜디오에 서서 자신의 발명품을 설명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조이와 실존 인물 조이 망가노는 당연히 다른 인물이다.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우리시대 성공한 인물, 자본가나 권력자를 향한 신비화나 존경으로 연결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나 실화에서나 인물의 영웅화나 신격화는 언제 어느 상황이든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사람이 영웅인 시대를 살고 있음을 늘 자각해야만 한다. 잠깐 허점을 드러낼 때, 자본주의적 미디어나 수상쩍은 정치권에서는 항상 대중의 영웅을 조작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조이』,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2016년 제작, 미국, 1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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