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개떡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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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개떡선생
  • 안연옥 기자
  • 승인 2020.10.1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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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거칠고 험한 파도 위를 항해하는 범선이 떠올랐습니다. 바다 위에서 위태하게 흔들리면서도 결국은 목적지에 당도하고 마는. 거친 바람에 맞서 돛을 조정하고, 높은 파도에도 중심을 잡으며 자신의 길을 가는 스승의 풍경입니다. 요란하지 않은 삶의 문장으로 풀어간 것들은 후배 교사의 마음에 따뜻하게 자리 잡습니다. 학교라는 삶터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는 저에게 위안이 되는 고마운 책입니다. 배를 움직인 것은 바람이 아니라 교육과 삶에 대한 열정이었음을 마지막 장을 덮으며 깨닫습니다. (강영진, 울산남목중학교 교사)

 

>>> 책 소개

개떡선생의 찰떡같은 이야기

박명순의 산문은 저자 자신의 삶과 구체적 생활 속에서 길어낸 맑은 샘물 같다. 오랜 교사 생활을 마치고 돌아보는 과거는 그래서 빛바랜 사진이 아니라 생생하게 현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발자국 같다. 이 책은 저자가 충남교육연구소 소식지에 박명순 선생님의 교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것인데, 학교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느낌, 그리고 이런저런 사색의 결과물이다.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들, 그리고 저자 자신에게 영향을 줬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저자는 자연스럽게 엮어놓고 있다. 저자의 별명이 개떡선생인 이유는, 저자 자신이 학생들 앞에서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어서이다.

교사로 살면서 많은 시간을 자학에 시달리며 살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아무리 용을 써도 나는 아닌 것이다. 아이들에게 쥐어 잡혀 휘둘리기나 하는 한심한 선생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도 꽝이고, 수업 시간에 상큼한 유머도 없고, 성적을 팍팍 올려주지도 못했다. 게다가 전교조 해직 교사도 아니고, 참교육 실천 교사도 아니고 수업의 달인이 되지도 못했다. 딱 하나, 상처를 주지 않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니 이거 하나는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다.

―「개떡선생중에서

단지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평범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는 저자의 겸양은 역설적으로 교사의 자리가 어디인지 가리킨다. 이런 면모는 추천사에서도 증언되고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지막 한 아이까지 함께 가길 원했던 선생님의 분투가 진솔하게 그려져 웃음이 나면서도 찌릿하다.” 어쩌면 이게 좋은 교사의 태도일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저자가 거창한 교사론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자가 교사 생활동안 겪었던 이야기와 감정들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아침 독서의 고요한 교실 분위기를 깨뜨리며 오늘도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다. 아침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늦은 수영이, 버스를 놓쳤다는 현수, 자리에 앉아서 책을 꺼내는 몸짓이 부산스럽다. 목소리를 낮추고 나름 조심한다고 노력하는 모습이지만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지각생에게 잔소리하지 않기가 나의 철칙이다. 아침에 만나는 아이들은 모두 안쓰럽다. 여기까지 오느라 온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독여주는 마음을 눈빛에 담아 보낸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보다 중요한 것중에서

이렇게 저자는 학교생활의 자잘한 일상을 통해서 자신의 교육관을 드러내기도 하고 다지기도 한다. 이런 소박한 자세가 아마도 교사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동시에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사람의 살아가는 이야기

이런 마음을 형성해준 것은 아마도 과거의 기억 같다. 교사로서의 삶을 담담히 말하고 있는 틈새로 저자는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며 그 당시에 형성된 정서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3부에 수록된 글들은 저자에게 영향을 주었던 존재와 사물들을 불러낸다. 할머니, 권정생, 최연진, 작은엄마, 항아리, 아이스께끼등이다. 이 글들에서 저자는 자신의 기억을 들춰보며 시간 여행을 한다.

언니는 혁명 사업에 뜻을 두었음에도 교조적이지 않았다. 정이 많고 따뜻한 성품이어서 언제나 일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었던 활동가였다. 그리고 나는 언니가 꿈꾼 인간답게 사는 세상의 내면 풍경을 만나는 감동을 누렸던 것 같다. 언니와 공적인 일을 함께 도모하기보다는 그렇게 이웃사촌처럼 격의 없이 만났다. 언니가 새날이와 새별이를 키울 때, 나는 등현이와 주현이를 키웠고 같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학부모 자격으로 만나기도 했다.

―「금강에 흐르는 80년대의 최연진중에서

결국 이 책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자신이 이야기를 좋아해서인지(언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을까) 글 자체도 이야기를 조단조단 들려주는 듯한다. 이야기는 소멸하고 이미지와 주장만 횡행하는 현실에서 이런 작은이야기들은 독자를 함께 어디인가로 이동시켜주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이는 독자가 저자에게 영향을 받거나 감화된다는 의미와는 또 다르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듣다 보면 독자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가 있지만, 대중문화가 천편일률적으로 강요하는 스토리에 억눌려버린 것만 같다.

특히 저자의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은 길이를 가졌으며 그렇다고 에피소드만도 아니다. 이야기에 숨결이 어른거린다는 것은 이야기할 때 입김과 내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는 뜻일 것이다. 박명순의 이야기는 그러한 이야기이다. 과장하지 않을뿐더러, 과잉된 의미를 부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경험과 느낌을 그 당시의 감정을 되살려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박명순의 산문집 안녕, 개떡선생을 들고만 걸어도 어떤 이야기들이 솔솔 새어 나올 것만 같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박명순 사진.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616pixel, 세로 3744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6년 05월 21일, 오후 4:19 >>> 지은이 소개

조치원 신흥동 건어물 가게 8남매의 맏딸로 유년을 보내다가 종촌 싯골 복숭아 과수원집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연극반 황토로 활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몇 차례 받은 후 늦깎이 교사로 임용됐다. 공주대학교, 순천향대학교에서 국어교육학, 현대소설 등을 강의했으며 현재 충남작가회의 독서 모임 간서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채만식 소설의 페미니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아버지나무는 물이 흐른다, 영화는 여행이다, 슬픔의 힘등의 저서가 있다.

>>> 작가의 말

책을 발간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충남교육연구소 소식지에 박명순 선생님의 교단 이야기라는 꼭지에 연재를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전교조 해직 교사도 아니었고 참교육을 위한 선봉에 서지도 않았던 평범한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연들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거대서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곤 했던 소소한 이야기들이 중심 언어가 되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런 세상의 변화 속에서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교사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한갓 민초의 물음표이며 넋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았음직한 꿈과 자화상이며 어쩌면 숨기고 싶었던 내 안의 나일 수도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지도 못했고 사재를 털어서 장학금을 만드는 미담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의 학력을 가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을 명예로 알고 살았을 뿐입니다. 단 한 번도 학생들을 얕잡는 언행을 해본 적이 없었고 학교라는 공간을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학교는 자랑스러운 일터였고 부족한 내면을 키우는 배움터였습니다..
 

>>> 책 속으로

수요일 6, 7교시 동아리 시간만으로는 부족해서 우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흙과 친해져야 했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서 상추, 쑥갓, 쪽파, 브로콜리, , 배추 모종을 심었다.

작업복 차림에 거름과 흙과 호미를 교재 삼아 한 학기 내내 배춧잎의 넉넉한 품새에 파묻혀 농부가 되고 싶은 이야기 사랑방아이들과 정신없이 지냈다. 아이들에게 이끌려서 가르침보다 배움이 더욱 푸짐했던 계절이었다.

늦게 심은 배추가 더 자랄까 싶어서 첫눈이 살짝 내렸어도 고집을 부려 수확을 미루었다. 배추가 얼지 않게 신문지, 마대를 덮어주며 유난을 떨었다. 날마다 새록새록 자라는 배추와 브로콜리, 쪽파들이 아깝기도 했고, 몽땅 뽑기가 서운하기도 해서 더욱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나름 텃밭 농사로 잔뼈가 굵은 남편과 상의해서 내린 비장의 결단이었는데.

―「자유학기제, 객기를 부려볼까나중에서

11월 초 새벽, 희망이는 떠났다. 매어 있는 모습이 불쌍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야간에 사슬을 풀어주었는데 우유급식 트럭에 치인 것이다. 희망이가 핏빛을 낭자하게 흩뿌리고 사라진 자리엔 빈 화분이 놓였다. 빈 화분이 희망이의 무덤처럼 여겨진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처참하게 생명을 마친 희망이를 애도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튀어 나왔다. 저마다 이별의 의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운동장 구석구석에 희망이 무덤이라고 십자가를 세우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의 모습은 진지했다, 국어 수업 시간에 글쓰기, 시의 소재가 되어 잊고 있던 기억을 살려내기도 했다. 미술작품에 등장한 희망이는 삶과 죽음의 무거움으로 돌아왔다.

―「저기 멀리 떠나가는 시간들중에서

도서관 옆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던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그 복숭아나무 한두 그루에 피어 있는 꽃들이 송알송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보아왔던 복숭아꽃이었는데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다가 다시 찾은 풍경이었다. 종촌 복숭아 과수원집에서 성장했다가 그곳이 행정수도로 편입되면서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복숭아꽃이 정겨웠다. 봄밤의 정겨움에 취하여 나만의 성()을 소유한 듯 설레었다. 봄꽃들의 노래는 명랑했다. 초승달이 제법 조명을 만들었고 봄꽃들은 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K도서관의 작은 뜰, 복숭아꽃 주변에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신비한 영령들이 달라붙었다. 봄밤이 아름다운 이유가 짧아서이고 또 봄에 피는 꽃들이 별처럼 빛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장소는 사람을 변화시킨다중에서

항아리가 보내온 100여 년의 세월이,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이 궁금해진다. 그동안 할머니가 집을 옮길 때마다 이 항아리는 당연히 함께 움직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고연에서 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청천으로, 미원으로 이사하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할머니는 아들, 즉 나의 아버지가 조치원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나름 자리를 잡아 결혼도 하고 집을 마련하자 아들을 따라 고향을 떠났다. 조치원의 작은 초등학교 담벼락을 벽으로 도랑 옆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여덟 명의 손주를 키우며 이십여 년 살았다. 그때마다 항아리도 조금씩 흠이 생겼지만 발효와 저장의 구실을 담당하는 데는 유효했다

―「할머니의 항아리중에서

 

>>> 차례

 

작가의 말 4

1부 안녕, 개떡선생

 

노래 불러주는 선생님 14

자유학기제, 객기를 부려볼까나 20

아픔을 들으려는 마음 31

배드민턴 36

부부 싸움도 수업 교재가 된다 46

영화 생일을 만나는 시간들 51

 

2부 내 슬픈 교단의 33페이지

 

내 슬픈 교단의 33페이지 66

저기 멀리 떠나가는 시간들 72

여행자처럼 떠나야 할 시간 81

가르칠 수 있는 용기보다 중요한 것 90

장소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98

학교 화장실은 여전히 엽기적이다 107

나는 지금이 좋아 118

미운 오리 새끼의 재해석 132

 

3부 개떡선생의 자화상

 

할머니의 항아리 140

할머니와 권정생의 한티재 하늘』 • 153

박옥순은 박명순이 되었다 157

언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을까 162

엄마의 걱정 보따리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169

아이스께끼 177

글을 낳는 집 186

토이 스토리 4로 만나는 아들과 딸 191

금강에 흐르는 80년대의 최연진 198

 

4부 거울과 유리창처럼

 

여름방학은 힘이 세다 208

채플린과 권정생 216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227

나도 돈을 훔친 적이 있다 232

되로 배워서 말로 풀어먹는 사람 242

개떡선생 250

어떤 숲에서 다시 만나랴 257

피로사회, 피로학교 263

명예퇴직을 했다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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