➄김혜식의 포토 에세이/ 골목은 ‘그 때’를 가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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➄김혜식의 포토 에세이/ 골목은 ‘그 때’를 가져서이다
  • 김혜식 기자
  • 승인 2020.04.05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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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인가? 내가 찍은 겨울 느티나무 사진을 보고 ‘나무가 실핏줄 같애’ 하던 어떤 언니를 생각한다.

 

20년 전인가? 내가 찍은 겨울 느티나무 사진을 보고 ‘나무가 실핏줄 같아’ 하던 어떤 언니를 생각한다. 그 때는 정말이지 나무뿐 만이 아니라 나무사이로 바라보이던 골목도 실핏줄 같았던 적이 있다. 지금은 나무도 굵어졌고 그 사이 골목도 널직해졌다. 그때 그 실핏줄 같다던 표현조차 아름다웠던 그 시절, 20년이 지나자 그 실핏줄은 많은 사람들이 번거로워했으므로 골목은 늘 존폐조차 아슬 해 보였다.

집집마다 한두 대씩 있는 차의 진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짜증스러워 했다. 이리 긁히고 저리 긁히다보니 튀어나온 담벼락도 밉고, 제 집 앞이라고 놓아둔 빈 화분이나 고추장 깡통도 거슬려 주차문제로 심심찮게 주먹다짐까지 벌이곤 했다. 심하면 정규 방송 뉴스도 탔다. 그러다 보니 넓은 골목은 집값까지 영향을 미쳤을 테고, 골목 안에 사는 사람 입장에선 슬며시 넓은 골목이 유리했을 것이다. 때 맞춰 장단 맞추듯 시에서 정책적으로 빈집 사들여 쌈지 주차장까지 만들어주니 정치를 참 잘한다 싶어졌을 게다.

어쨌거나 아슬아슬하다는 건 언제나 위험스럽고 불리하다. 문득 내 심장을 생각했다. 심장에는 관상동맥이라는 3개의 굵은 혈관이 있는데 그 아래 몇 개씩 핏줄이 계속 가지를 치듯 이어진다. 그 중 하나라도 막히거나 좁아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어느 날 나는 4개가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다.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검진 결과가 나오자마자 병원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결과 통보를 받고 가슴속에 스텐트라는 걸 4개씩이나 박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었다.
 
공주 골목들도 그렇게 빠르게 혈관에 스텐트를 끼워 박듯 혈관을 넓혀갔다. 하긴 공주 골목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전체가 골목을 뻥뻥 뚫리기 시작했다. 사람살기 편하게 도시는 조각되어져 갔다. 어린아이 젖 물리고 잠 들었던 어머님의 안방자리가 날아가고, 고물거리며 잠 들던 남편의 형제들 건넌방이 날아가면서 실핏줄 같아 보인다고 했던 나뭇가지 사이에는 누군가의 검은 세단이 도도하게 세워지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런 풍경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골목이 그리운 건 단지 ‘그때’를 간직하고 있어서 그리울 뿐, 지금에 와서 ‘그때’를 남기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짓 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사진은 그때를 오롯이 간직해 준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오래된 사진에 연연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전혀 상관없는 남의 추억 속에까지 들어가 참견하고 나서기도 하고, 결혼 전까지는 당연히 알지도 못했을 나의 어머님 젊었을 적, 내 남편 어렸을 적, 내 시누이들의 어렸을 적까지 참견하면서 공감한다. 그들의 어렸을 적, 저기 어딘가의 골목집에서 아롱다롱 살았을 따스함을 한 장 사진에서 읽는다.
 

그리하여 추억의 귀퉁이, 이야기가 들어있던 한 장 사진이 귀히 생각 되어 실핏줄 같다던 사진을 오래 거실에 걸었다. 그때 그 모습은 다 사라지고 '살았던' 과거가 있을 뿐이지만,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내 설명을 들은 남편은, 사진에는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비밀이 있는 같아 더 좋다고 했다.

그의 추억과 내가 참견하던 추억은 다르지만 한 장 사진을 바라보며 그는 그의 추억을 바라보고 나는 내 추억의 통로를 본다. 어쨌거나 우리는 서로 각자 볼 것 만 보고 기억할 것만 기억한다. 그래서 봐도봐도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 사이는 늘 추억을 즐겁게 얘기하는 좋은 연인이 될 수 있다. 내 푼크툼과 그의 푼크툼이 만날 수 있다는 건 힘들고 아팠던 옛날이야기 같은 시간들의 공감 때문이다. 공감은 지독한 인연을 만든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만나서 부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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