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정태춘의 양단 몇 마름
상태바
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정태춘의 양단 몇 마름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3.01 16: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단 몇 마름

 

시집 올 때 가져 온 양단 몇 마름

옷장 속 깊이 깊이 모셔 두고서

생각 나면 꺼내서 만져만 보고

펼쳐만 보고, 둘러만 보고

석 삼년이 가도록 그리다가

늙어지면 두고 갈 것 생각 못하고

만져 보고, 펼쳐 보고, 둘러만 보고

 

이 글을 읽다보면 아련한 흑백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지금 보다는 조금 오래전 우리 어머니들의 새색씨적 빛바랜 사진, 그리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영화 속의 한 장면 내지는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양단치마와 저고리 감을 만져보고 다시 농속 깊은 곳에 넣어 두고를 반복하는 장면, 어떻게 보면 참 섬세하고 사실적인 분위기를 떠 올리게 하는 시 한 편이다.

 

정태춘은 시인이라기보다 1970년대에 나온 가수다. 그의 노래엔 우리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그는 노랫말을 쓰고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다. 그가 쓴 수많은 노랫말 중에 이 양단 몇 마름이란게 있는데 이것은 옛날 여자들이 시집 갈 때에 필수적으로 가지고 가던 혼수감 중의 하나다. 나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지금과 달리 혼수 감 속에 필수적으로, 양단 공단을 비롯해서 이불 몇 채,소청 몇 필, 버선, 몇 결래, 앞치마, 속옷, 등 여자들이 시집가서 쓸 것들을 한 보따리 두 보따리 해서 보냈다. 동네에선 시집온 새댁이 얼마나 해왔는지 구경 오곤 했다. 시집온 새댁은 그것을 농속에 고이고이 두고서 하나씩 둘씩 꺼내어 쓰곤 했다. 지금이야 홈쇼핑이나 시장, 또는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한보따리 해가지고 와서 새로 산 농속에 고이고이 쌓아놓고 하나씩 둘씩 아껴 써야 마음이 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대부분 자기에게 주어진 물건들을 아껴 쓰는 습성이 있다. 그건 아마도 오랫동안 어렵게 살아 왔던 우리 조상들이 아껴 쓰는 생활습관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그런 DNA를 받은 연유에서인지 여기 이 시속에 바로 그런 이야기가 있다. 혼수로 가져 온 양단을 /옷장 속 깊이깊이 모셔 두고서 /펼쳐만 보고, 둘러만 보고/ 그러니까 아까워서 기회만 되면 꺼내 보기만 하고 아까워서 차마 가위를 들고 잘나내지 못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결국 세월이 흐르고 늙어 지면 쓰지도 못하고 두고 갈 것을 생각도 못하고 //만져 보고, 펼쳐 보고 들러만 보고// 그러다가 홀연 떠나는 사람의 마음, 나중에 쓰지도 못하고 두고 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걸 아끼고 아끼던 우리 부모님들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하다.

 

우리 조상들이나 부모님들은 하나 같이 아끼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 창일 때였다. 우리는 수업을 끝내고 가정 방문을 나가 쌀 절약을 위해 마을의 집집을 방문하면서 계몽하고 다녔다. 그건 부엌에 있는 밥솥 옆에 작은 단지를 하나 놓고 밥할 때마다 그날 먹을 쌀의 양에서 한 수저 또는 두 수저씩 작은 항아리나 단지에 덜어 놓고 밥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엔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새마을 운동을 통하여 쌀 절약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그 뒤 볍씨 개량으로 통일벼를 심으면서 점차 쌀의 자급자족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초,,고 학생들에게 불과 3,40년 전만 해도 그랬다하면 믿을는지.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가 되어 우리의 부모님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어 열심히 아끼고 저축하여 이만큼 이루어 놓은 것에 감사해야 할 건데 그러질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옛부터 절약과 검소는 임금의 덕목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된다 했는데 당시에 우리 대통령은 그걸 몸소 실천하였고 온 나라 국민들에게도 실천하도록 힘썼던 것이다. 일찍이 공자와 주자가 논하는데 주자가 말하길 "문왕께서는 거친 옷을 입고서 백성을 편안히 하고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라고 했다. 중국의 왕 얘기이나 임금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말한 것이다. 그 임금이 효문황제였는데 그는 귀하기로는 천자이고, 부유하기로는 온 세상을 소유했으면서도 몸에는 검은 명주와 낡은 솜으로 무늬 없는 옷을 입었다고 한다. 임금의 솔선수범을 백성이 따르도록 한 것이다. 전에 대통령을 쫒겨 났던 필립핀 대통령부인 이멜다가 옷이 수천벌에 구두가 3천켤레였다고 보도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쯤 되면 대통령이나 그 부인이나 안팎에서 얼마나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 먹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는 다른 나라의 얘기이지만 우리 또한 귀감으로 여겨야 되지 않을까 한다.

 

요즘 가끔 카톡을 받는 내용 중엔 위와 같이 절약하는 마음의 정반대 이야기가 들어 있다. 공통적인 내용 중의 하나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건강할 때 까지 모두 쓰고 가라는 내용이다. 떠난 뒤 자식들이 남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 미리 다 주면 안 된다는 것,내가 벌은 것이니 내가 가 다 쓰고 가는 것이 맞다는 얘기이나 어디 부모 마음이 그런가. 위에서 마랬듯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DNA가 식량은 물론 전기 가스 물 모든 것을 절약하는 것에 생활화가 되도록 했으니 쓰는 것이 서툴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현실적인 내용이지만 그만큼 지난 세대와 현 세대와 생각의 차이가 현저하게 난다는 애기에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