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의 포토 에세이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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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의 포토 에세이⑦
  • 김혜식 기자
  • 승인 2020.04.1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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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에선 풀꽃 하나라도 뽑아내지 마라

골목길을 돌다보면 늘 보던 것에서 생전처음 보는 것 같은 미시감을 느낄 때가 있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무엇을 잃었는가?’ 아니면 무엇을 영 잊고 말았는가?’ 갑작스런 낯설음으로 적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골목 끝 다른 길로 통하는 골목에서 오늘따라 꺽임의 각도가 틀린 것 같은 느낌, ‘그런 골목을 이대로 계속해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갈등이 찾아올 때처럼.

때때로 인생에서 그랬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후 친정집에 엄마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근처까지 가서야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게 낯설어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에게 갈 때마다 걸음이 빨라지던 골목이 사라졌다. 엄마는 그랬던 골목을 가져가고, 살던 집도 가져가고, 대문을 떼어 가셨다.

돌아올 때 낯익은 골목으로 펼치려고, 돌아올 때 손때 묻은 문 열고 돌아오려고, 혹시 돌아오는 길 잊을까봐 그랬는지, 엄마는 낯익음을 가져가셨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더 떼지 못하고 낯설음으로 온몸을 떤다. 낯익음과 낯설음의 자리가 그렇게 가깝다는 걸 그때서야 새삼스레 깨달았다.

어쩌면 골목은 그렇게 돌아오기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 골목에 난 풀 하나라도 밟지 말고 풀꽃 하나 뽑아내지 마라. 골목에서 핀 풀꽃은 모두 엄마가 피운 꽃일지도 모른다.

남의 담벼락인줄도 모르고 아무데나 감아 올라가던 나팔꽃, 밟힐까 건너뛰던 발아래 민들레, 담 틈사이 비집고 뾰족 올라온 맨드라미 촉까지, 무심한 풍경 같지만 엄마가 키우던 꽃일지 모른다. 돌아올 때 기억하려고, 그랬을지도 모르게 허름하지만 귀한 꽃들이 자라는 골목이다.

엄마가 심은 꽃이라서 해매다 붉은색만 봐도 눈물이 나는 애뜻한 색깔을 가졌거나, 때때로 우리의 소꿉재료로 이파리부터 꽃 대궁까지 온갖 풀채 밥상이 되던 풀꽃들. 안마당에 심었던 맨드라미가 무슨 맘을 먹었는지 다음 해에는 밖에 까지 날아가 저 혼자 다른 집 담벼락에 붙어서 크는 신기한 기적까지, 모두 엄마가 주고 가신 풍경들일지 모른다. 그런 풍경 보려고 가끔 엄마가 다녀가신다는 걸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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