➂김혜식의 포토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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➂김혜식의 포토 에세이
  • 김혜식 기자
  • 승인 2020.03.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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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숫간까지 그리운 정릉집

형제 중에 남자로 가운데에 성식이가 있다. 언젠가 그 아이는 어렸을 적 엄마가 보고 싶어 혼자서 정릉을 올라갔다 왔단다.

얘기하다보니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두 한 번씩은 정릉 집을 다녀왔었다. 형제 중에 유독 그런 감정과는 둔한 친구가 성식이었는데, 몰라서 그랬지 그도 그리워 할 줄 아는 애였다.

그래, 가보니 어떻든?”

집이 많이 낡았더라구

그럴 만도 하지, 벌써 60년 전 집이잖니

근데 누나, 골목이 그렇게 좁았었나?”

좁아 보이든?”  우리가 놀 땐 사방치기 해도 될 만큼 넓었잖아?”

너무 신기하더라는 얘기였다. 그랬다. 모든 추억 속의 것들은 추억의 크기에 따라 넓거나 크고 높아졌다. 골목길도, 운동장도, 동산도 예전의 것들은 넓었고 여럿이 뛰어 놀기에 충분했다.

이런 저런 애길 하다 보니, 내가 처음 공주에서 골목 사진을 찍을 때 만해도 울컥 할 만큼 닮은 골목풍경 중에 하나가 밖으로 난 화장실 푸세식문이었는데, 동생도 밖으로 난 화장실 뚜껑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뚜룸하게 반 닫혀 있는 걸 보면 지저분한 느낌보다 아직도 이런 게 남아 있다는 게 오히려 추억을 자극했었다.

우린 똥숫간이라 부르던 변소를 가진 한옥집에 살았었다.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엄마가 던져놓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간 우리들은 수난을 거듭하는 시기를 보냈다.

밥을 해본 적 없는 나는 연탄불에 밥을 해야 하는데, 밥물 조절과 불 조절에 서툴러 매 번 실수를 했다. 쌀이었을 때는 얌전하던 밥이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열고 위로 올라왔다. 아래는 타고 위는 설면서, 밥은 밥이 아니게 됐다.

먹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었다. 대략난감이란 말은 이럴 때 적당했다. 버리면 죄받는다는 말에 익숙한 터라 자주 고민을 하다가 밤에 몰래 화장실에 버리는 일을 시작했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내 생전에 벌을 받는다면 그일 일지도 모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떤 때는 비닐에 싸다가 몰래 시장까지 가서 쓰레기 더미에 버린 적도 있었다. 이유인즉, 누구라도 우리 집 쓰레기인줄 알면 엄마 욕 먹일까봐 하는 가상한 걱정을 했었다고나 할까? 그랬었다. 그때는, 선택해야 할 최선이란 게 치졸한 방법까지 동원해야 할 만큼 많았다.

그런 골목이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을 줄 안다. 청춘의 골목일 수도 있고 인생의 골목일 수도 있는 아름답거나 부끄러운 기억은 모두 골목에서 시작되거나 일어났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란 단어에서 어떤 이는 향수를, 어떤 이는 애증을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모든 발걸음을 아는 골목이 싫었었다. 급기야는 정릉집이 너무 싫어서 집을 팔자고 우겼다. 사당동으로 이사를 하고 이사한 집에서 얼마쯤 살다가 결혼을 해서 공주로 내려왔다.

그러던 내가 골목을 사진을 핑계로 다니기 시작했다. 내 아픔이나 수치가 추억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골목, 때때로 아름답거나 그리워지는 골목이 공주에 있다는 건 공주를 좋아하게 되는 조건이 되었다. 시집을 잘 왔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아니게 됐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아래 골목이 사라지거나 소방도로라는 명분으로 대 도로가 집 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10년 전 쯤에 찍었던 풍경은 추억 저 멀리로 밀려나고 있었다. 정릉골목도 공주골목도 이제는 사라졌다.

한 때 나를 지나 너에게 가기도 하면서 우리를 만들기도 했던, 이 세상에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의미를 가졌던 골목들, 그 단어조차 재생되고 나면 얼마 후에 골목이란 단어는 사전에서 사라지거나 아예 타버린 밥처럼 똥숫간으로 던져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내 추억에도 재생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골목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감춰 주는 고마운 도시재생, 그러나 때때로 슬프고 아쉬운 건 또 뭔지? 조화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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