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에 사라지지 않아도 될 것이 있을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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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에 사라지지 않아도 될 것이 있을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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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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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사우(祠宇)‧사당(祠堂)‧영당(影堂)‧제각(祭閣)‧재실(齋室)‧제실(祭室)‧제단(祭壇) 조사(4)

인간 전병철(작가)

 

지금까지 공주 지역에 있는 향교와 서원을 비롯한 사당영당사우재실제실제단 조사에서 파악된 총 221개 건물이나 시설을 이름별, 성씨별로 분류정리하며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그러면 지역별로는 어떻게 분포하고 있을까? 즉 공주시에 있는 사당이나 재실제단은 어느 곳에 얼마나 세워져 있을까? 현재 공주시 행정 구역은 6개 행정동(行政洞: 금학동신관동옥룡동웅진동월송동중학동)27개 법정동(法定洞: 중학동 4, 웅진동 4, 금학동 6, 옥룡동 4, 신관동 3, 월송동 6)을 관리운영하고 있다. , 1개 읍(유구읍)9개 면(계룡면반포면사곡면신풍면우성면의당면이인면정안면탄천면)에서 161개 법정리(法定里: 계룡면 17, 반포면 8, 사곡면 13, 신풍면 14, 우성면 23, 유구읍 18, 의당면 12, 이인면 17, 정안면 22, 탄천면 17)를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공주시는 총 188개 법정동(法定洞‧里)로 구성운영되고 있다다음은 공주시 행정동()과 법정동(), 법정리(), (統‧班)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정리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공주시 행정 구역을 편의상 크게 시내권과 읍면으로 구분하고, 법정동리를 기준으로 조사된 총 221개 사당과 재실제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시내권(市內圈)과 읍()()별 사우사당영당제각재실제실제단의 전체 수를 많은 순서대로 나열하면 탄천면(35), 시내권(31), 계룡면(28), 우성면(28), 신풍면/유구읍(17), 이인면(16), 반포면(15), 정안면(13), 의당면(11), 사곡면(09) 순으로 나타났다.

공주시 사당이나 재셀 및 제단 분포 수는 읍면 중에서 탄천면이 가장 많은 35개로 시내권 31개보다 많았다. 또 계룡면과 우성면이 28개로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하였다. 이처럼 탄천과 계룡, 우성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이유를 여러 각도에서 찾아보고자 하였으나 이것이라고 딱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만 공주시 전체로 보아 산이 험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보다는 낮은 산에 농사짓기 편한 곳, 교통이 불편한 곳보다는 편한 곳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편이었다. 이런 점에서 북쪽 지역보다는 남쪽 지역에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 정도이지 지역적으로 특별한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역별 분포 자료를 문중과 관련지어 검토하면 어느 문중이 어느 곳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가령 반포면에 있는 서원사당재실제단 총 15개 가운데 이천서씨와 관련된 것이 재실 6(박약재, 고청재, 숭연재, 예재각 2, 영모재)에 충현서원까지 포함하면 총 7개나 되어 반포 지역은 이천서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산 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우성에 있는 사당재실제단 총 28개 가운데 만경노씨와 관련 있는 것이 귀산리에 3, 동곡리에 2, 목천리와 반촌리에 각각 1개씩 총 7개 있어 이를 통해 서로 이웃해 있는 귀산리와 동곡리목천리반촌리 일대는 만경노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에서 공주시에 있는 총 221개의 사당재실제단을 행정 구역에 따른 법정동리별로 정리하였는데, 이것을 다 동()()에 있는 사당제실제단 전체 수를 기준으로 하여 많은 동네별로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 동네()에 가장 많은 사당재실이나 제단이 있는 곳은 탄천면 안영리로 고령김씨와 함양여씨, 진주정씨 재실 각각 1개씩, 파평윤씨 재실 2개 이렇게 총 5개를 비롯하여 밀양박씨 묘역과 거창신씨 묘역에 토지지신 단이 각각 1개씩 있어 총 7개나 있었다.

총 7개나 있는 탄천 안영리에 이어 총 5개가 있는 동네가 여럿 있었는데, 공주시 웅진동계룡면 화은리’, ‘반포면 봉곡리’, ‘탄천면 광명리이렇게 4개 마을이 이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4개 있는 동네는 9개 마을, 3개가 있는 곳은 11개 마을, 2개 있는 동네는 24개 마을, 1개 있는 동네는 77개 마을이 있었다. 사당과 재실이 하나도 없는 동리로는 63개 마을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한 마을()에 같은 문중의 사당이나 재실이 여럿 있는 곳이 있었다. 이에 해당하는 곳으로는 공주시 상왕동’(경주이씨 2), ‘공주시 태봉동’(평산신씨 2), ‘계룡면 봉명리’(강릉유씨 2) ‘계룡면 화은리’(천안전씨 2), ‘반포면 공암리’(이천서씨 3), ‘반포면 봉곡리’(이천서씨 3), ‘사곡면 호계리’(진주정씨 2), ‘신풍면 백룡리’(의령남씨 2), ‘우성면 내산리’(전주이씨 2), ‘우성면 단지리’(동복오씨 3), ‘우성면 동곡리’(만경노씨 2), ‘의당면 유계리’(전주이씨 2), ‘이인면 산의리’(부안임씨 2), ‘탄천면 광명리’(연안이씨 3), ‘탄천면 분강리’(밀양박씨 2), ‘탄천면 안영리’(파평윤씨 2) 등이 있었다.

이렇게 한 마을에 같은 문중의 사당이 여럿 있는 곳은 대부분 같은 문중(성씨) 사람들이 입향조(入鄕祖: 어떤 마을에 맨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 또는 그 조상)를 중심으로 둥지를 틀고 살아온 집성촌인 경우가 많았다. 꼭 입향조가 아니더라도 후손들이 한 지역에 모여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았다.

심지어 같은 마을, 같은 문중(종중)에 재실 이름까지 똑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반포면 봉곡리가 이에 해당하였는데 이곳에는 이천서씨 예재공파 재실 예재각이 마을 위아래로 각각 있었다. 하나는 대종(大宗: 동성동본의 집안 가운데 가장 큰 종파)이고 하나는 소종(小宗: 대종에서 여럿으로 갈려 나간 종파)이라고 한다.

한 마을()에 같은 문중(종중)의 사당이나 재실이 있다면, 특히 여러 개가 있다면 대체로 그 지역은 문중 사람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중 사당이나 재실이 있다고 하여 무조건 그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세종(연기)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부안임씨는 세종시 건설로 인하여 묘역을 공주 지역으로 옮겨 새롭게 조성하고 그곳에 사당이나 재실을 마련하였다. 한 마을 여러 곳에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중 사람들까지 집단으로 이사하여 살고 있지는 않았다. 이처럼 사당이나 재실이 여럿 있어도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곳으로 보기 어려운 곳이 있다.

남양홍씨 익산군파 종중(宗中)도 부안임씨와 마찬가지 세종시 건설로 인해 연기 지역에서 공주 지역으로 묘역과 사당재실을 옮겼다. 아마 부안임씨나 남양홍씨 이외에도 세거지(世居地: 대대로 살아온 곳)를 옮긴 문중이 더 있을 것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문중 묘역이나 사당재실을 어쩔 수 없이 옮겨야만 하는 이유는 세종시 건설과 같은 국가적인 사업 이외에 산업단지 조성, 도로 건설 등 대개 공적인 사업이 추진되기 때문이다. 부안임씨 문중처럼 세종 지역에서 아예 다른 지역인 공주 지역으로 이전하는가 하면 같은 지역 안에서 이전하기도 한다. 또 특이하게 칠원윤씨 사정공파 문중은 문중 땅이 다행히 산업단지 건설부지(建設敷地)에 다 포함되지 않았는지 산업단지 건설로 생긴 보상금으로 재실을 옮기지 않고 새롭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여하튼 문중 사당이나 재실이 여럿 있어도 집성촌이 아닌 곳이 있으며, 요즘에는 집성촌이라고 해도 그 구성 인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집성촌의 구성이나 그 의미가 예전 같지는 않다.

실제는 하나의 사당(재실)인데, 마치 두 개 사당(재실)처럼 여겨지는 곳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대문(大門)에 현판이 없거나 대문에 현판이 있어도 이름을 중심 건물과 다른 ○○()’이라고 쓰곤 한다. 하지만 들어가는 대문에 ○○()’ 또는 ○○()’라고 하여 건물 이름에 해당하는 현판이 있고, 또 중심 건물에도 ○○()’ 또는 ○○()’라며 건물 이름에 해당하는 현판이 있는 곳이 있었다. 현판만 보아서는 건물이 2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1개인 건물이다. 이렇게 대문과 중심 건물에 각각 다른 건물 이름에 해당하는 현판이 있는 재실로는 양주조씨와 김해김씨 재실 각각 1개씩 있었다.

공주시 사당재실 관련 건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이들, 어르신들의 말을 들어보면 다들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였다. 만나는 분마다 내가 죽으면 누가 관리하냐는 말을 하곤 하였다. 문중 재실을 지금까지는 그나마 어르신들이 관리해왔는데 앞으로 관리할 사람이 없어 큰 문제라고 하였다. 마을마다 젊은이가 없다 보니 앞으로 어르신들마저 돌아가시면 관리할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제사 지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보니 관리할 사람마저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라며 큰 걱정을 하고 계셨다.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보면 관리가 되어있지 않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재실도 있었다. 재실로 가는 진입로가 없거나 담이 무너져 있고 대문이 쓰러져 있는가 하면 주변 나무들이 너무 자라 들어가기조차 힘든 곳이 있었다. 아예 길이 없고 방치된 채 놔둔 재실도 있었다. 아마 관리하는 분에게 사정이 생겨 더는 관리하기 어렵게 되었거나 종중에 사정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아니면 관리를 하긴 하는데 1년에 몇 번 하다 보니 하필 조사하러 찾아간 때가 관리한 지 오래된 시기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당과 재실을 찾아가고 살펴보는 것만도 어려운데 찾아간 곳이 하필 무너져가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 아쉽기 그지없고 뒤돌아오는 발길이 무겁고 뭔가 허전한 기분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공주시 사우‧사당‧영당‧제각‧재실‧제실‧제단 조사(5) "문화유산, 아깝지 않게 제발 문 좀 열어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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